때는 2009년 가을이었습니다. 전라북도 군산의 장애인복지관에 입사한 지 3년, 한창 열정 넘치는 사회복지사인 저는 매번 전라도 내에서 진행되던 나들이에서 탈피하고자 중증 지체, 뇌병변 장애인분들을 모시고 대전에 있는 동물원 나들이를 목표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준비 과정 속에서, 나들이에 참여하실 지역의 장애인분들께 한 분, 한 분 전화 연락을 드리게 되었는데, 대부분 흔쾌히 “올해는 장소 선정이 정말 좋다, 참여하겠다” 라는 답변들을 주셔서 기분 좋게 전화 연락을 이어가던 중, 명단에 기재되어 있던 송OO 할머님께 연락드릴 순서가 되었는데, 잠시 ‘멈칫’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송OO 할머니는 중증장애인이시고, 여든이 다 되어 가시는 어르신인데다가, 하체 마비로 항상 집안에서도 겨우 비스듬히 기대어 누우신 채로 생활하실 수밖에 없으신 분인데, 나들이에 모시고 갈 수 있을까??’ , ‘더군다나 식사 후에 운동을 전혀 못하셔서 점점 풍채(?)가 좋아지셨는데..’ 라는 혼자만의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임사회복지사에게 자문을 요청했는데, 선임사회복지사는,
“아, 그분?? 한 2년 전 나들이를 마지막으로 참여하셨는데, 당시 봉사자가 단체로 봉사활동을 나온 군인 중 한 명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돕는 것에 대해 매우 버거워했거든.. 그래서 할머님이 많이 미안해하셨긴 했어”라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말씀드렸음에도 할머님은 나들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마자, “아, 나는 그때 사정이 있어서 못갈거 같아”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심스레 이유를 여쭈었지만 계속해서 사정이 있다는 말씀만 하실 뿐 명확한 이유를 말씀하지 못하셨습니다.
조용히 듣던 저는, 조심스레 “할머님, 혹시 할머님을 도와드릴 자원봉사자가 힘들까봐 그러시는 건가요?”라고 여쭈었고, 할머님은 “아니여,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냥 몸이 별로 좋지 않아서 나들이를 못 갈 것 같다”라는 말씀만 반복하셨고, 전화를 서둘러 끊으셨습니다.
이에 열정넘치는 사회복지사로서 오기까지 발동한 저는, 다음 날 직접 댁으로 찾아가서 할머니를 설득하기로 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할아버지도 같이 계셨는데,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뵙게 되었는데, 두 분 모두 살아오시면서 닮으셔서 그런지 두 분다 풍채(?)가 참 좋으셨습니다.
앉아서 나들이 장소, 식사, 간식 등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동물원.. 할멈이랑 젊어서 연애할 때 가보고 한번도 못가봤구만..”
그 말씀을 듣던 할머님께서 “아이고, 영감이 주책스럽게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네” 라며 제 눈치를 보셨습니다.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두 분 다 나들이를 가고자 하는 마음이 매우 크심을....
저는 기필코 설득하리라 다짐하며 30분 넘게 설득을 하게 되었고, 결국 할머님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고, 당시 헬스장에 다니며 근육을 만들고 있는 제 팔뚝을 보여드리며, 제가 직접 모시겠다는 착한 허세(?) 가득한 각오와 함께 할머님께로부터 반강제 승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나들이 당일이 되었고, 어렵사리 성사시킨 나들이임을 아는지, 다행히 날씨는 그 어느때 보다도 화창하고, 따뜻했습니다.
할머니댁에 방문하여 우선은 기관의 작은 차로 모신 다음, 복지관에 도착하여 일반 대형버스로 오르시도록 돕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다들 할머님의 풍채를 보고 역시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행여나 할머님이 나들이도 시작하기전에 상처받으실까봐 얼른 제가 할머니가 앉아계신 휠체어 앞에 등을 돌리고 앉아
“할머니, 어서 저에게 업히세요, 제가 오늘 하루 할머님과 파트너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질투하시더라도 어쩔수 없어요, 하하하” 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리자 할머니는 그제야 미안한 마음 반절, 고마운 마음 반절이 담긴 미소를 지으시며 제 등에 업히셨는데..
솔직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들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할머니를 등에 업고 버스 계단을 올랐습니다.
몇 개 안되는 버스의 계단이 그날따라 어찌나 길고, 높게만 느껴지던지...그래도 이를 악물고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할머니를 업고 올라가서 가장 앞자리에 앉혀드리고, 계속 “미안해, 내가 괜히 따라왔어, 주책이야 주책...”이라는 말씀만 연신 반복하시면서 미안해하시는 할머님께 “할머니, 저 체격 좋고, 힘 좋아서 복지관 뽑힌거에요!! 제발 걱정하지마세요!” 라고 전혀 힘들지 않음을 어필하며 옆자리에 같이 앉았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오랜만의 나들이는 시작되었고, 저는 그 날 ‘미소를 장착’ 한 채, 휴게소 이용, 대전의 동물원 사파리 이용,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으로 복귀하는 과정 속에서 제 기억 속에 3회 이상, 할머님을 업고 버스 승,하차를 수행하였고, 할머님은 다행히도 너무나 행복하신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다른 참여자분들과 함께 담소도 나누시고, 제가 밀어 들어드리는 휠체어에 앉으신 채 동물원 구경도 하시고,
사진도 찍으시며 나들이를 무사히 마치시게 되었습니다.
물론, 집에 돌아온 저는 말로만 들었던 ‘파김치가 된다’를 실제로 경험하며 끙끙 앓는 소리와 함께 밤을 지내게 되었지만...
다음날 출근해서도 계속되는 허리와 허벅지 통증으로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사무실에 앉아서 어제 나들이 사진을 정리하고 있는데, 동료직원이 복지관 로비에 저를 찾아온 손님이 계시다는 얘기를 전해주어서 ‘아침부터 누구지?’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나가보았는데, 로비에 계신 손님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도는 것 같았습니다. 보는 순간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앞에 펼쳐진 광경은..1인용 전동스쿠터에 풍채가 좋으신 송OO할머님과 할아버님이 함께 앉아계셨는데, 할머님 댁이 복지관에서 차로 이동해도 15분 이상 걸리는 곳이어서 전동스쿠터로 오려면 족히 1시간은 걸릴 지역이시고, 더군다나 복지관이 위치한 곳은 소위 말하는 ‘재’를 넘어야 올 수 있는 곳인데 1인용을 풍채 좋으신 두분이 타고 오셨다는 사실에 놀라서 한 동안 말을 못하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아니, 여기까지 그 작은 거를 두 분이서 타고 오시면 어떻게 해요??하실 말씀 있으시면 전화로 하시지~”라고 채근하듯이 말이 나와버렸는데, 할머님께서 눈물을 글썽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그렇게 고생했는데..덕분에 내가 너무나 즐거웠는데..전화로 고마움을 다 표현하지 못할거 같아서..”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님의 한 손에는 사탕꾸러미가 들려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려는 것을 계속 억지로 삼키면서 애써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를 안아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따뜻한 차와 할머님이 가져오신 사탕을 먹으며 로비에 앉아서 어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간이 흘러, 두 분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려 스쿠터에 오르시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죄송하게도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두 분을 배웅하기 위해 함께 걷는데, 허리와 허벅지 통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나은듯했고, 뒷자리에 앉으신 할머님이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 ‘재’ 넘어 사라지시기까지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들어왔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두 분다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자녀들이 멀리 타지역으로 모시고 가서 뵐 수 없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시기 위해 전동스쿠터를 타고 재 넘어오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