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평범했던 적이 없었던 한빛맹학교에서의 봉사활동은 저에게 많은 배움을 준 소중한 경험입니다.
이 학교에서 매 방학 때마다 봉사를 하면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약시를 갖고 있는 아이에게는 글씨가 확대된 교과서를, 손 근육이 잘 발달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점자 찍는 연습을, 그리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에게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을 통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험은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어 말이 어눌하여 의사표현이 서툴렀던 ‘수아’와 함께 했던 일입니다.
수아는 5학년이었지만 또래에 비해 의사소통이 많이 느린 편이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말을 해도 반응이 없었으며 잘 걷지 못해 주로 앉아있고 항상 싫증을 냈습니다.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해봐도 수아는 제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 저는 매우 속상했습니다.
그래도 수아와 친해지기 위해 매일 돌봄 교실에 갈 때마다 수아한테 먼저 달려가 안아주며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수아는 왼손 근육량이 낮은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왼손으로 블록을 쌓는 연습과 점자 찍는 연습을 도와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수아가 많이 힘들어 했지만 제가 칭찬을 하면 할수록 수아는 더욱 집중하여 열심히 블록을 쌓았습니다.
또한, 수아의 어휘력을 기르도록 하기 위해 동물 모형 장난감을 만지도록 한 후 감각을 통해 어떤 동물인지 알아 맞추도록 했습니다. 수아가 아는 동물은 코끼리, 기린 뿐 이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던 모든 동물 장난감들을 손으로 만지게 하고 동물들의 특징을 알려주며 동물 이름들을 쉽게 외우도록 했습니다.
그중 수아는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상어 장난감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잘 안 웃던 수아가 상어 장난감에서 소리가 나면 꺄르륵 웃었습니다. 수아가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으며 덕분에 수아는 상어라는 단어를 쉽게 외울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1시간 동안 고작 단어 하나 외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아한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수아 이제 상어도 흉내 잘 내네! 멋지다!”라고 하며 칭찬을 해줬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3년간 한빛맹학교에서 봉사하는 동안 수아와 함께 지내면서 수아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고, 꾸준히 그림책을 읽어주며 발음을 교정하는 것을 꾸준히 도왔습니다.
수아는 제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밝아졌고 이제 제가 학교에 찾아갈 때마다 저를 반가워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수아와 함께 노래를 부르던 중 수아가 밝은 모습으로 “유진 언니 좋아.”라고 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비록 발음은 서툴렀지만 3년 만에 드디어 제가 좋다고 수아가 표현해줬을 때 매우 기뻤습니다. 그리고 저 말은 제가 여태까지 들었던 말들 중 가장 기분 좋고 따듯한 말이었습니다.
수아가 하나씩 천천히 배워나갈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 매우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변화는 저에게 큰 행복이었습니다. 사실 때로는 수아가 돌발 행동들을 할 때마다 당황하기도 했고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아 가르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하나를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수아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가르친다면 수아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수아가 따라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며,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믿음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아에게는 친한 친구 소혜가 있습니다. 소혜는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점자로 책을 많이 읽어 매우 영리한 아이였습니다.
또한, 주변 아이들을 배려하며 잘 챙기는 따듯한 아이였습니다. 친구들 양치도 시켜주었으며 친구들에게 점자로 동화책을 자주 읽어주었습니다.
가끔 소혜가 걷다가 앞이 안 보여 부딪혀서 넘어지거나, 밥을 먹을 때 숟가락 찾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씩씩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소혜의 모습이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던 순간은 소혜와 같이 ‘행복한 세상’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입니다. 소혜가 저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기에 저는 최대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해서 할아버지, 어린이, 아저씨 등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읽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뇌성마비에 걸린 아이에 관한 삶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소혜는 이 아이가 안타깝다며 이러한 아이들을 많이 도와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소혜도 몸이 불편하지만 자기보다도 더 힘들어 하는 친구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소혜의 배려 깊은 생각은 저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지내려고 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혜의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으며, 봉사는 제가 도움을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혜의 꿈은 사회복지사, 소방관 등으로 정말 다양합니다. 사실 처음에 소혜의 꿈이 소방관이라고 했을 때 놀랐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은데 어떻게 소방관이 되지?’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속으로 궁금해 하고 있었을 때 소혜가 먼저 “저는 소방서에서 긴급 전화를 받는 일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시각장애인들은 소방관이 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소혜의 꿈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던 제 편견을 깨주었습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시선과 편견들 때문에 장애인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소혜가 나중에 커서 꼭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빛맹학교 아이들은 축구, 여행, 영화보기 등 다양한 활동들을 좋아합니다.
시각장애 아이들은 어떻게 이러한 활동들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굴러갈 때마다 소리가 나는 축구공으로 축구를 할 수 있고, 소리를 통해 상상하며 마음으로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통해 보고 느낌으로써 이 아이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더욱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하기 전에는 장애학생들은 정말 안타깝고 불쌍한 아이들로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편견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아이들도 꿈들이 있으며 사랑받고 싶어 하는 평범한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앞으로도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느끼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