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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실과 정직을 배우며
  • [자원봉사활동수기 | 201904ㅣ글조연옥님ㅣ그림우진아님]
우리 누리연합자원봉사단에서는 어르신들께 점심 한 끼를 대접하려고 동사무소 앞에 천막을 세우고 의자를 배치해 근사한 야외식당을 만들었다. 때가 한여름이었기에 황기를 넣고 끓인 닭죽을 대접하려고 준비를 한 것이다. 우리가 봉사활동으로 정한 동네는 서울 구도심의 이른바 벌집이라는 쪽방이 모여 있는 동네였다. 그 동네에는 어르신들 혼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계신 이른바 독거노인이 많다. 가끔 내외분이 산다고 해도 집도 허름하고 삶의 환경이 그리 썩 좋지 못해 생활이 무척 어렵다. 우리 봉사단이 아침 일찍부터 점심 준비를 했지만 봉사자의 수가 부족해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 “자, 여기 앉으세요.” 어르신들을 안내하고 식탁에 닭죽을 퍼 날라 드리는 일이 쉬운 일 같은데도 막상 덤벼서 일하다보니 등에 땀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서너 시간 봉사를 했으니 이제는 끝났나 싶어도 어르신들은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그 때 구석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는 나의 등을 툭툭 쳤다. 나는 무슨 불편한 점이 있는지 고개를 숙여 여쭈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면서 곤란한 부탁을 하셨다 “여기에 닭죽 한 그릇만 담아주면 안 될까?”
사실 봉사활동을 하는 곳에서 닭죽 한 그릇을 드시고 가는 것은 괜찮지만 그릇에 싸 가지고 가는 것은 좀 곤란했다. 그래서 내가 주저주저 하자 할아버지께서는 낙담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내가 괜히 곤란한 부탁을 해서 미안해요.” 순간 나는 스티로폼 그릇을 이용하여 닭죽 한 그릇을 떠 드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닭죽을 퍼 비닐에 잘 싸 할아버지께 건넸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고개가 땅이 닿도록 인사를 하시고 돌아가셨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쪽방 어르신들께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중에 우연히 그 할아버지를 길에서 만났다. 할아버지께서는 손수레에 박스를 하나 가득 싣고 길가에서 쉬고 계셨다. 나는 무척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누구신가?”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내가 닭죽이라는 얘기를 꺼내자 그 때서야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애기 엄마. 그 날은 정말 고마웠소. 그 닭죽을 우리 할멈한테 가져다주니 얼마나 잘 먹던지…….” 할아버지께서는 한참동안 내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시는 걸로 봐서 무척 고맙게 느낀 것 같았다. “그날 할머니께서도 오셔서 닭죽을 좀 잡수시지…….” “에이, 우리 할멈은 풍을 맞아 잘 걷지를 못해요. 그래서 창피하다고 밖으로 잘 안 나와요. 그러니 어쩌겠어. 내가 할멈이 불쌍해서 한 그릇 싸달라고 부탁 한 거야.”
할아버지께서는 다른 사람은 닭죽을 싸가지 못했는데 자신만 싸들고 간 것이 나의 큰 배려덕분이었다고 한참동안 칭찬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수레를 밀어드리며 할아버지 댁을 알아 놨다. 나중에 봉사활동에 올 때 기왕이면 할아버지 댁으로 가고 싶었고 할머니의 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나는 동료 몇몇과 할아버지 댁으로 봉사활동을 나갔다. 그날 할아버지께서는 박스를 주우러 가지 않고 우리를 맞아주셨다. 할머니의 병환은 생각보다 깊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집안을 청소하고 밀린 빨래를 했다. 그런데 어르신이 벗어놓은 옷이 너무 낡아 보였기에 할머니께 여쭈었다. “할머니 이 옷 할아버지 옷인데 그만 입고 버려야 되겠어요?” 그러자 노인 내외께서는 깜짝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아직은 한참 입을 수 있는 옷인데 버려서는 안돼요. 그것 말고는 입을 옷이 별로 없거든요.”
그 말을 듣자니 여간 가슴이 아픈 것이 아니었다. 버렸어도 벌써 버릴 옷이었는데…….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친정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부모님께 외쳤다. “엄마, 아빠. 유행이 지나서 못 입는 옷이 있으면 모두 내놔요.”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어안이 벙벙했던 부모님께서도 내 설명을 듣고 무척 흐뭇해 하셨다. 그리고는 옷장과 장롱을 뒤져 웬만한 옷은 다 꺼냈다.
나는 다음 봉사활동을 갈 때 그 옷을 싸들고 갔다. 그리고 두 어르신 앞에 펴놓고 말씀을 드렸다. “옷이 좋지 않아 안 입으실 거면 도로 가져갈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말씀하세요.” 그러자 두 분께서는 무슨 얘기냐며 오늘 호사했다고 입이 귀에 걸리셨다. 요즘은 옷을 아껴 입고, 나눠 입고, 바꿔 입고, 다시 입는다고 하여 아나바다 운동이 대세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남한테 옷을 물려주려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혹시 헌옷을 좋아할는지 아니면 기분 나빠 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두 어른께 그런 말씀을 드린 것이었다. 그렇게 옷을 나누어드리고 한 달여 동안 봉사활동을 나가지 못했다. 조별로 봉사활동을 나가는데 한 주는 바쁜 일이 있어서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우리 조가 봉사활동을 나가는 날이 되었다. 나는 쪽방의 할아버지 부부가 궁금해 그곳에 들렀다. 마침 할아버지께서 아침에 일을 나가셨다가 돌아오셨는지 수레를 고치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예전보다 더 반갑게 나를 맞았다. “왜 이리 안 오나 궁금했지.”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 내게 건네는 것이었다. 펴보니 5만 원짜리 두 장이었다. “할아버지, 웬 돈이에요?” “응, 지난번에 가져온 헌 옷의 새끼봉창에서 이게 나왔어. 그래서 주인에 돌려주는 거야.” 순간 나는 얼음이 되어 그 자리에 동상처럼 굳어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가슴에서는 큰 덩어리 하나가 올라와 목에 걸려 말문을 막았다.
그러나 머리는 전광석화처럼 돌고 있었다. 돈 10만원이면 할아버지가 박스 줍는 일을 한 달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더구나 그 돈은 아무도 모르는 돈으로 할아버지께서 그냥 써버려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할아버지, 이 돈을 찾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나는 할아버지께 그냥 그 돈을 쓰지 그랬느냐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는 할아버지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이라는 것을 이미 머릿속에서 생각해 냈다.
돈을 도로 드리고도 싶었으나 이 역시 할아버지의 양심을 짓밟는 일이라 생각해 고맙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분명 그 돈은 옷 주인인 아버지께서 엄마 몰래 감춰두었던 돈인데 찾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돈을 들고 시장으로 갔다.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속옷을 샀다. 우리가 아무리 옷을 물려주고 나눠 입는다고 해도 속옷은 그리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속옷을 산 것이다. “할아버지, 이것 속옷이에요. 돈 10만원으로 모두 샀어요. 그러니 두고두고 입으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웃기는 말씀을 하셨다. “남자 옷에서 나왔으니 애기 엄마 돈은 아닐 테고…….이거 우리 둘이 이 돈 쓴 죄로 감옥에 가는 것 아니야?“ 할아버지의 농담에 우리는 배를 쥐고 웃었다.
이 세상에는 세월이 가면 거저 나이를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격이 쌓이면서 나이를 먹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흔히 똑똑하다는 일부 높은 사람들은 그냥 나이를 먹고, 살림이 어려운 사람들은 인격이 쌓이면서 이순(耳順)이 되고 고희(古稀)가 되는가보다. 어르신 내외로부터 세상의 삶을 배운 나는 오늘도 그 분들을 찾는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성실과 정직을 가졌기에 그것을 배우려고 나는 그분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