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학년이 되고 동기들은 다들 자원봉사를 하며 각자의 스펙을 쌓기에 열중하고 있었고, 나 또한 여러 봉사활동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홍보물을 보았다. “꿈을 설계하는 희망캠프” ‘무슨 자원봉사일까?’ 하며 과사무실에 들어가 “조교님 희망캠프 지원서 받아볼 수 있을까요?” 물어 지원서를 받아왔다.
지원서를 읽으니 장애청소년이 구체적인 진로 행동 계획을 수립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 당당히 꿈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애청소년 전문 멘토링 활동이었다.
지원서를 읽고 자원봉사를 하고는 싶었지만, 장애인 관련 봉사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겁이 나기도 했다.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하고 있지만, 그동안 티비, 인터넷에서 장애인에 대한 안 좋은 소식만 들어서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편견을 갖은 채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2017년 5월 여의도 센터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갖게 되었다. 처음 만난 내 멘티 ???은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중학교 2학년 예쁜 소녀였다.
처음 만나자마자 ??이는 “선생님이 내 멘토예요?”라고 물으며 살갑게 다가와 줬다. 나는 나를 소개했고, 우리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설명하고 여러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워갈 무렵 ??이는 “선생님은 핑크색 같아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내 목소리가 핑크색이라니 무슨 뜻이지’라고 생각하며 “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되물었다.??이는 “선생님 저는 앞이 보이질 않아도 사람의 목소리로 사람의 이미지를 맞출 수 있어요.”라고 예쁜 미소로 웃으며 말해주었다.
그렇게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한창 더울 8월에 2박 3일로 여름캠프를 다녀왔다. ??이를 오랜만에 만났다. ??이는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손을 잡으며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우리는 2박 3일 동안 ??이의 꿈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함께 했다.
여러 활동 중 MBTI 설문조사를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시각장애를 배려하지 않은 설문지가 앞에 놓였다. ??이는 “선생님 저 안 보여요. 점자면 혼자 읽어서 할 수 있는데.. ”라며 속상해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나는 ??이가 속상하지 않도록 “아니야, 그래서 선생님이 옆에 있는 거지! 그리고 선생님이 읽어주면 더 이해하기 쉬울걸?”라며 위로를 건넸다. 우리는 웃으며 설문조사를 맞췄고,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는 “선생님 여기 분위기는 고급 진 호텔 느낌이에요."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그곳은 정말로 고급 진 리조트였다.
나는 놀라 “??아 어떻게 알았어? 그게 느껴져?”라고 물었다. ??이는 웃으며 “네! 저는 마음으로 다 느낄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마음의 눈이 무엇인지 느껴졌고, 점점 나의 편견을 깨주고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다음 활동은 그림을 그리는 활동이었다.
갑자기 ??이는 울음을 참으며 “선생님 저 못하겠어요.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
선생님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앞을 본 적이 없어서 그림이 뭔지, 사진이 뭔지도 몰라요.
후천적 시각장애인은 앞을 한 번이라도 봐서 그림이 뭔지, 가족의 얼굴도 봤잖아요. 저는 한 번도 엄마 얼굴, 아빠 얼굴, 동생들 얼굴 본 적이 없어요.
제 소원이 뭔지 아세요? 제 소원은 가족들 얼굴 딱 한 번만 보는 게 제 소원이에요.”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보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보여서.. 고작 중학생 작은 소녀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슬퍼서, 얼마나 가족들 얼굴이 보고 싶었으면 소원이라고 간절하게 말했을까 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게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 “괜찮아, ??이는 그 대신 누구나 가질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잖아.
선생님은 처음에 선생님 목소리만 들어도 핑크색을 떠올려줘서 너무나 고마웠는걸?”라고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나의 작은 위로에 ??이는 웃어주었고, 그렇게 ??이와의 예쁜 추억으로 가득한 2박 3일 여름캠프가 끝이 났다.
무더웠던 여름이 끝이 나고 하늘이 맑고, 높은 가을에 ??이를 다시 만났다. 평소 음악을 좋아해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를 위해 음악회를 함께 보러 갔다.
음악회를 보는 내내 ??이는 입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고, 좋아하는 모습이 나까지도 느껴졌다.
음악회가 끝나자 ??정이는 나에게 “선생님 사실 저 음악 되게 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요.”라며 스치듯 말하였고, ??이는 다시 “선생님 저 사진 찍어주세요!”라고 말하며 뛰어갔다.
“??아 자 여기. 사진 예쁘게 나왔어” “선생님 저 눈 안 감았죠? 머리는 괜찮아요?” “응 괜찮아 예쁘다.” “와 기분 좋다.
프로필 사진으로 해놔야지.”라며 또래 중학생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나는 ??이를 만날 때마다 어여쁜 순수함으로 물들어갔다.
그 후 해가 바뀌고 2018년이 되었다.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손끝이 차가워질 그 무렵 ??이에게 “선생님 저 ???????? 개막식에서 노래 불러요!
개막식에서 노래 불러달라고 학교로 찾아왔어요.”라고 전화가 왔다.
나는 개막식을 보며 ??이의 맑고 예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나가는 그 장면을 수백 번 돌려보았다. 희귀병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던 작은 소녀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불러 감동을 주었다.
이런 소녀가 내 멘티가 되어주어 나까지 순수함으로 물들었고, 나는 다양한 봉사활동 중에 어떤 봉사보다 값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직도 나는 ??이가 여름캠프 때 했던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사소한 일들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일인가.
우리는 어쩌면 장애를 프레임에 가두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