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이는 연꽃처럼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어릴 때는 세 살 때까지 말도 못 하고 누워만 지내서 우리는 00이가 잘못된 게 아닌가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름에 잘 쓰지 않는 한자어를 사용해서 00이가 지적장애가 된 건 아닌가, 장애 판단을 받고부터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00이가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그 전엔 오히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동(?)으로 소문났었지요. 저학년 때는 고층아파트가 밀집한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거기 아이들은 순해서 00이가 조금만 괴롭히면 울고 도망가니까, 그럴수록 짓궂은 짓을 더 많이 했어요. 00이 때문에 얼굴에 손톱자국이 난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00이 엄마는 늘 학교에 불려 다녀야 했어요. 그럴 때마다 야단치고 혼냈지만, 욕구불만이 많은 아이처럼 달라지지 않았어요.
00이 언니는 그 학교의 학생회 부회장이었어요. 그런 00이 때문에 학교에 불려가는 게 싫어서 엄마는 00이를 건너편 시장 근처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시키자고 했어요. 아빠도 그게 00이와 언니, 모두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학을 시켰어요.
전학한 후 한동안은 조용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00이는 엄마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어요.
“엄마, 오늘 학교에서 어떤 애가 나를……”
“너, 여기서도 다른 아이들 때리고 다니면 이제는 학교에 안 보낼 테니 그리 알아!”
“……”
엄마는 00이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다그쳤습니다.
아마도 00이가 누구를 괴롭혀서 학교에서 오라는 소리를 하려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00이는 그때부터 더 말이 없어졌지요.
그리고는 몇 달 뒤, 옆집에 사는 00이 친구로부터 우리는 엄청난 사실을 들었습니다. 같은 반에 불량한 학생 몇 명이 00이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걔네들은 아이들 보는 데서 00이에게 교실 바닥을 혓바닥으로 핥으라고 하고, 안 하면 때리고, 심지어는 화장실로 끌고 가서 옷을 내리게 하는 등 온갖 나쁜 짓으로 괴롭히고 있다고 했어요. 우리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찔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길 하나 사이에 두고 떨어진 학교인데, 전에 다니던 학교 생각만 했던 거지요.
우리뿐만 아니라 학교도 난리가 났지요. 학교도 서둘러 이 일을 정리하려고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해야 했어요. 00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킬 수도 없고, 전학시킨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장담을 할 수 없어서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궁리 끝에 가해 학생들과 부모들이 함께 반성문과 재발 방지 약속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들만의 반성문으로 처리가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학교에서도 이런 생각을 이해해주어서 문제는 일단락 처리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00이에게 특수반 수업을 시키자고 했습니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니 아이들이 바보라고 놀린다는 거였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몰랐는데,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가니까 자기들보다 못한 00이의 부족한 면이 눈에 띄기 시작했던 겁니다.
00이는 그렇게 해서 특수반에 들어가서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그때부터 00이한테 1학년 공부부터 다시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야 우리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공부하기 싫어해서 안 하는 건 줄 알았는데, 00이에겐 공부가 역부족이었던 걸 알게 된 것입니다.
특수반 선생님의 권유로 00이는 대학병원에 가서 정신 감정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지적장애라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찔한 마음이었습니다. 지적장애는 보통 IQ70 이하라고 하는데 00이는 IQ가 45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수학과 영어 공부를 시킨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어요?
그날부터 나는 00에게 교육 방식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00이를 부모가 죽은 다음에 염전 노예들처럼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살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에 실생활에 필요한 생활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행에 데려가서 돈을 입금하고, 출금하는 법,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다니면서 끝말 이어가기 시합을 하면서 어휘력 늘리기 교육했고, 그게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뒤에는 이야기 이어가기를 하는 등 살아가면서 정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간단한 사무실 일들을 시키면서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도 늘 찰떡같이 붙어서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결혼식, 동창회, 사람들 간의 만남에도 늘 00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끼리 만나서 대화하는 게 무섭지 않은 일이라는 걸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저를 아는 사람들이 00이 없이 제가 혼자 약속 장소에 나가면, ‘00인 어디 갔냐?’고 묻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00인 늘 아빠와 그림자처럼 다니는 사이가 되고부터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00이에겐 주민센터 심부름, 은행 심부름 등은 도맡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일까지 했습니다. 00이는 자기가 못하는 순간에는 안내데스크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처음에 장애진단을 받고 ‘IQ45’라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진단 결과를 받고 앞으로 이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죽을 때 같이 죽을까,
별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그때부터 평생소원은 내가 00이보다 하루만 더 살다 죽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00이가 아빠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현실 생활 능력을 함께 배운지 어언 10여 년, 지금 00이는 서른두 살입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지만, 자신감에 차서 살고 있습니다.
전에는 무슨 일을 시켜도 겁을 내면서 뒤로 숨으려고 했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앞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최근에는 어느 여류 시인이 보내준 시집을 선물 받고 시를 쓴다고 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내용의 시들이 대부분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10여 년의 노력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노력을 한다면 정말 멋진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부푼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00이가 장애진단을 받고서 마음에 많이 걸렸었는데 지금은 그림자 위에 우뚝 선 하얀 연꽃처럼 예쁘게 피어나는 00이를 바라봅니다.
꽃은 예쁘게 피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바라보기 때문에 예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