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에 언제나 나보다 한 걸음 앞장서는 목발, 차를 탈 때도 목발이 먼저 올라탄다.
목발이 앞에서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제는 내 몸의 일부 인 듯 목발에서도 나의 체취가 난다.
나는 목발 덕에 바로 설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살아오는 동안 나를 세운 또 다른 목발들이 한둘이 아니다.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게 될 때부터 지금껏 나에게 마음의 목발이 되어준 풀과 나무, 귀여운 가축들, 친구들, 어머니….
체육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가방도 무겁고 양쪽 목발을 겨드랑이에 낀 채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나는 콘크리트가 잘 깔린 학교 가는 길에서 비켜나 흙길을 따라 뒤뚱거리며 언덕으로 올랐다. 높고 멀기만 하던 것들이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발아래로 낮게 깔렸다.
언덕 위에서는 초록색 나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고 피하지도 않았다. 나는 초록 나라의 공주가 되었다. 새는 행진곡을 부르고 나비들은 나풀거리며 환영의 춤을 추었다.
초록색의 풀 위에 내가 누우면 풀들도 함께 누워 주었다.
나무 그늘이 동쪽으로 자리를 옮길 때가 되어 저만치 언덕 아래로 학교를 마치고 오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희미하던 아이들이 점점 크고 선명해지자 얼른 일어나 집으로 갔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께선 늘 밭에 계시고 가축들이 반겨주었다. 목발 사이를 지나 다리에 살포시 몸을 문지르는 고양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나를 넘어뜨릴 듯 달려드는 누렁이, 누렁이를 피해 조금 들어가면 홀로 외양간을 지키는 소가 커다란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홀로 쓸쓸히 갇혀있는 소를 애써 외면하고 올망졸망 토끼들에게 달려가 언덕 위에서 걷어온 칡넝쿨을 던져준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먹이를 먹는 토끼들은 친구가 없는 나를 웃을 수 있게 했다.
찬물에 밥을 말아 허기를 달랠 때 머리에 짐을 이고 엄마가 들어오셨다. “울 막둥이 학교 잘 갔다 왔어?”라는 말에 작은 목소리로 “네에”라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이고 온 감자를 얼른 쪄 달콤한 설탕과 함께 학교 갔다 오느라 힘들었을 내게 주셨다.
학교가 싫었던 나는 다음 날도 학교 가는 길에 옆길로 샜다. ‘중간치기’ 3일째였다.
언덕으로 어머니가 불쑥 나타나셨다. 슬픈 표정이었다. “막둥이 학교 안 가고 왜 여기 있어!” 어떻게 아셨을까? 누구에게도 알려준 적 없는 나만의 장소였는데….
엄마는 양쪽 목발로 내 엉덩이를 받쳐 업고 성큼성큼 언덕을 내려가셨다. 학교가 점점 가까워지자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래, 학교 가지 말자.” 엄마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나를 학교 옆 냇가에 내려주셨다.
나는 피라미들이 노니는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았다.
엄마도 아무 말씀 없이 돌을 들추어가셨다.
한참 후 나는 다시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다슬기로 된장국을 끓여 주셨다.
마당의 탱자나무 가시를 잘라 다슬기 살을 빼 주시면서 “학교 가기 싫어?”라고 물으셨다.
“체육 시간에 교실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워.” 나의 대답에 “내일도 냇가 갈까?” 하셨다.
이후 하교하는 친구들이 냇가로 와 과제물에 대해 알려 주고, 체육 시간에는 나대신 주번이 교실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럼 이제 나 혼자 교실에 안 있어도 돼?”라는 나의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 후로 체육 시간이면 주번이랑 같이 칠판에 낙서도 하고 도시락도 먹고 노래도 불렀다. 나에게 반 친구가 생긴 것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나는 목발을 집고 우산을 쓸 수 없어 학교에 안 갔다.
그런데 아침부터 소낙비가 내리고 있었다.
미스트를 뿌린 듯 반짝거리는 접시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커다란 우산이 불쑥 나타나더니 “자야, 학교 가자!” 하며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가까이 걸어오더니 “가방 줘.”하면서 팔을 쑥 뻗었다.
앞뒤로 가방을 메고 우산을 든 친구는 곰처럼 걸었고, 양쪽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고 걷는 나는 가제처럼 걸었다. 그 친구 덕에 비가와도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일요일이었다. 친구가 봉지를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소풍 가자”는 말에 선뜻 목발을 챙겼다.
경사진 곳을 올라갈 때면, 화난 전갈의 발처럼 목발을 휘저었고, 버둥거리는 나를 친구는 탱크처럼 밀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쯤 친구는 하얀 봉지를 풀었다. 하얀 밥과 김치뿐이지만 너무나 달게 먹었다.
아카시아 줄기를 꺾어 잎을 훑어내고 잎줄기로 머리를 돌돌 말며 미장원 놀이를 하였다.
어느새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언덕을 내려갈 때도 친구가 없으면 나는 못 간다.
나는 게처럼 옆으로 목발을 벌리고 걸었다. 친구는 내 앞에서 뒷걸음치며 내가 아래로 쏠릴 때마다 받쳐 주며 또 하나의 목발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야, 내 얼굴 봐봐. 부었지?”라며 얼굴을 들이댔다.
부었다기보다는 팅팅 불은 듯 눈은 새우 눈이 되었고 광대뼈조차 살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요즘 화장실 가기가 두려워. 엄마랑 병원 가서 검사받고 왔어.” 하며 울었다.
나는 안 부었다며 거짓말로 위로했다. 할 말이 없어 물을 많이 마시라고 엉터리 처방까지 내려 주었다.
친구는 병원 가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친구를 기다렸다.
그러더니 비가 오는 날에도 친구가 오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빗소리를 들으며 온종일 집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들에서 돌아오신 엄마가 비옷을 벗어 마루 끝에 걸치시며 “비가 많이도 온다.
울 막둥이 친구는 수술이 잘 되었나 모르겠네.” 하시며 제 엄마와 신장이 맞아 그나마 다행이라며 혀를 차셨다.
심장이 내려앉는 거 같았다. 마당을 때리는 빗줄기가 나도 때리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도 찾고 하느님도 부르면서 어지러울 정도로 울었다.
친구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목발이 푹푹 빠지는 좁은 논두렁길을 뒤뚱뒤뚱 걸어 친구를 보러 갔다. 수술을 했는데도 친구는 더욱 상태가 안 좋았다.
마치 물 밖으로 밀려난 복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오니라고 힘들었지?”라며 친구는 좋아했다.
친구 엄마는 나에게만 음료수를 주셨다.
친구는 물도 마시면 안 될 정도로 신장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난 다시 혼자가 되어야 했다.
학교에 갈 힘도 없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엄마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장에 갔더니 자두가 나왔더라.”
하시면서 껍질을 벗겨 물렁물렁한 부분을 잘라 입에 넣어 주셨다. 시고 단 과육이 내 목으로 꾸역꾸역 넘어 들어갔다.
그것이 약이 되었나. 나의 목발이 되어 주던 친구는 갔지만, 그와 함께하던 새콤달콤 재미있던 우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늘에서 친구가 나를 보고 있겠지? 나는 양쪽 겨드랑이가 헤질 정도로 열심히 목발을 짚었다.
학교에도 빠지지 않고 잘 다녔다. 체육 시간에 교실에 혼자 남는 것도 참아냈다.
홀로 교실을 지키며 본 창가의 소나무 한 그루, 쇠줄에 가지가 묶여 자라지 못하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소나무, 소나무에 물을 주며 다짐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도 있다.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