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 학교 갔다 올게”
“할머니, 나 배고파”
“할머니, 나 왔어”
“할머니! 할머니 있잖아~”
대화를 시작할 때 반드시 상대방을 지칭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머니와 얘기할 때면 ‘할머니’ 라는 말을 꼭 붙였다.
남들 앞에서는 말수도 적고 조용한데, 할머니 앞에서는 수다쟁이가 돼서 하루 동안의 일들을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한창 또래친구들과 어울리는 나이인 중학생에 접어들고 나서도 할머니랑 같이 있는 순간이 제일 즐거웠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제일 먼저 교실을 빠져나와 집으로 뛰어오는 게 일상이었다.
내 기억의 시작은 할머니였고 기억 어디에나 할머니가 있었으며 나의 시간은 할머니와 함께 쌓였다.
어느 덧 중학교 졸업이 가까워지는 겨울이 되었고 그 즈음부터 할머니의 얼굴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얼굴만이 아니라 손, 다리, 심지어 눈동자 색까지 흰색이 아니라 노랗고 누렇게 되었다.
처음에는 겨울이어서, 귤을 박스째로 사다놓고 먹으니까 그렇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제 귤 먹는 거 금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 라고 말했다.
할머니와 나는 의학적 지식이 전무했고, 별다른 지병도 없이 건강하던 할머니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몸은 노랗고 누런 단계를 지나서 점점 칙칙하고 어두워져서 흙빛으로 변했다.
할머니께서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오신 후 오줌 색이 이상하다고 한 다음날이었다.
“우리 OO이 학교 갔다 올 동안 병원 좀 갔다 올게.” 라고 말씀하신 후, 병원에 다녀오신 할머니 손에는 종이가 한 장 들려있었다.
모든 글자가 영어로 적혀있던 종이에서 읽을 수 있는 글자라고는 ‘cancer'(암) 뿐이었다.
유명한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적어준 소견서였다.
의사는 최대한 빨리 대학병원에 가기를 권유하였으나 나의 겨울방학이 시작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학병원에서 검사할 동안 마땅히 지낼 곳이 없었다.
다행히 작은 아빠가 근처에 있어서 잠깐 신세를 지기로 하고, 학교엔 상황을 설명하고 할머니와 함께 머물 곳으로 향했다.
할머니께선 본인 몸 상태보다 내가 학교를 결석해서 고등학교를 가는데 불이익이 있을까봐 제일 걱정하셨다. 나에겐 앞으로 다니게 될 고등학교, 대학교, 나의 미래보다 할머니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학교를 못 다니게 되더라도 할머니만 건강하면 다 괜찮았다.
대학병원은 환자복을 입은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백화점이나 호텔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크고 깔끔하고 편의점부터 은행, 식당 등 모든 시설이 다 있었다.
할머니께서도 눈을 휘둥그레 뜨시고 “여기서 OO이 손 꼭 붙잡고 다녀야겠네.
길 잃어버리면 할미 혼자 못 찾아가” 하셨다. 정말로 할머니 손을 놓치면 다신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잡고 다녔다.
검사가 끝나면 별 이상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말을 기대했다.
영어로 적혀있던 소견서에 유일하게 해석할 줄 알았던 'cancer'가 마음에 걸렸지만 할머니께 애기하진 않았다.
암에 걸린 사람들의 예후가 전부 안 좋은 것도 아니고, 할머니께선 건강하셨으니까 큰 문제가 아니라고 혼자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러나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와 작은 아빠에게 할머니께선 췌장암 말기에 암이 다른 곳으로 너무 전이되어서 항암요법도 소용없을 거고 고통만 클 거라고, 지금부터 3개월 예상하는데 3개월 이전에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다고, 밤에 잠들어서 아침에 눈 못 떠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갑작스레 마주하면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할머니는 나의 엄마, 아빠였고 나의 친구였고 나의 전부였다.
그렇게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은 온전히 할머니와 나 둘만의 시간으로 보냈다.
할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나빠지셨다.
별로 뭘 먹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도 내가 밥을 먹을 때면 꼭 숟가락을 들고 같이 먹었다.
식전 약, 식후 약, 잠들기 전 먹는 약 등 여러 종류의 약들을 나눠서 먹어야 하는 약 분류는 내 담당이었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 가짓수가 워낙 많아서 약만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았다.
똑같은 걸 먹고 마시고 생활습관이 거의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몸무게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할머니의 몸은 노랗고 누런 피부색에서 흙색을 거쳐 검정빛이라고 해도 될 만큼 어두워지셨다.
피부가 타서 검은 게 아니라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팔과 다리는 점점 말라지셨는데 복수 때문에 배는 갈수록 볼록해지셨다.
변해가는 할머니의 몸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할머니께서 깨어있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거였다.
깨어있는 시간조차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기 힘들어하셨다. 대화주제가 쉴 새 없이 바뀌었고, 이 얘기, 저 얘기를 오갔다.
밤에 잠잘 때가 되면 할머니께서 아침에 눈을 뜨지 않을까 봐 겁이 나서 항상 손을 잡고 할머니께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눈을 감은 채 웃으면서 내 질문과는 어울리지 않는 답을 웃으면서 말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렇지 않은 척 할머니의 말에 반응을 맞춰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거였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 모습을 할머니께 보여주는 게 꿈이 되었다.
추운 겨울만 지나가면 할머니랑 같이 손잡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월 초였다. 한 달만 더 있으면 고등학생이었다.
의사가 말한 3개월에 접어든 시점이기도 했다. 나는 할머니가 자꾸 잠자는 것이 불안해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말을 걸고, 손을 꼭 잡고 흔들고 힘을 주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희미하게 눈을 뜨시고는 “우리 OO이 밥 잘 먹고 손 깨끗이 씻고 있지?” 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도 똑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꼭 잡고 잠들었던 할머니의 손을 흔드는데, 평소랑 달랐다. 힘없이 툭 떨어졌고 손을 흔들고 어깨를 강하게 흔들고 할머니를 소리쳐 부르는데 미동도 없으셨다.
그렇게 할머니께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교복 입은 내 모습을 보지 못하시고 3월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도 난 할머니가 자는 모습, 웃는 모습, 화내는 모습, 뒷모습, 평소 버릇, 표정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오직, 할머니의 목소리만이 어렴풋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깨어있을 때마다 말씀하시던
“우리 OO이 밥 잘 먹고 손 깨끗이 씻고 있지?” 이 말을 다시 한번 할머니의 목소리로 듣고 싶다.
“우리 OO이 밥 잘 먹고 손 깨끗이 씻고 있지?”
“응 할머니, 나 벌써 내년이면 대학교 졸업해서 간호사 돼. 나 할머니랑 같이 병원에서 있었을 때 간호사 선생님들 보면서 간호사 되고 싶다는 꿈 가진 거야.
할머니 나 밥 잘 챙겨먹고, 손도 잘 씻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사실 지금도 할머니 너무 보고 싶은데, 난 참는 거 잘하니까 할머니랑 당장 만나는 거 참고 있는 거야.
할머니가 화내는 것도 싫고. 그러니까 나 앞으로도 밥 잘 먹고 손 잘 씻고 건강하게 아픈 데 없이 잘 지낼게. 사랑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