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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에서 살아난 기적
  • ['코로나19 위기극복' 체험 수기 | 202108ㅣ글 이경순님ㅣ그림 남은서님]
‘나는 요양보호사다’ 재가 요양보호는 가정으로 돌봄을 찾아가는 서비스로 오전 9~12시, 오후 1시~4시까지 어르신을 케어하고, 오후 5시~7시까지는 오전에 케어한 어르신 저녁과 밤사이 드실 음료와 저녁 약을 드시게 하고 퇴근이다. 이렇게 반복하던 때 감기처럼 , 몸살처럼 목이 칼칼하고 코가 막혀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목 치료와 코 치료를 하고 엉덩이 주사와 약을 3일치 받아와 복용하였는데, 낫질 않아 다시 이비인후과를 찾아 똑같은 치료를 2번 더 받았다.
그런데 계속 두통과 몸이 쳐졌다. 그래도 어르신 케어를 빠질 수 없어 아파도 다시 치료를 하면서 돌봄을 계속했는데, 월요일 오전 돌봄을 하는데 너무 힘이 들어 잠깐 쉬었다. 그런데 땅속으로 꺼져 앉는 느낌에 오전케어를 마치고 이비인후과를 찾앗는데 2층 계단을 올라서는데 무릎에 꺾이면서 한발도 내딛지 못할정도로 기운이 빠졌다. 몇일 째 입맛이 없어 음식을 못 먹었는데 감기약 때문인가 했다. 오후에 케어를 못하겠다고 보호자에게 전화를 하고 영양제에대 항생제를 섞어 정맥주사했다, 의사와 상담했는데, 의사가 폐렴이 온 것 같으니 내과에서 x-ray 촬영을 권유하였다. 그 결과 폐렴으로 나와 큰 병원으로 갔더니 코로나 검사부터 하고 오라 하여, 검사를 해놓고 돌아왔는데, 숨이 많이 차고 기침이 나왔다. 이튿날 검사결과만 기다리다가 너무 힘들어서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다시 주사를 맞았다.
맞고 나오는 길에 코로나 ‘양성’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집에와 보건소에 전화하니 1시간 내로 오겠다고 해서 대충 약과 옷, 세면도구를 챙겨 엠블런스에 실려간 곳이 보라매 병원이다. 병원 도착 후 의사를 만나 문진을 하는데 숨이 차다고 이야기하였더니 산소호흡기를 부착해주고 “할머니 그냥 치료가 힘들겠네요” 라고했다, 왜,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폐렴이 와서 잠을 재워놓고 치료를 할께요”라고 말을 했다. 급하게 소변을 꽂고 정맥주사를 꽂고, 영양제랑 주렁주렁 매달고 중환자실로 갔는데 의사가 “현재 상태가 좋지 않아 좀 힘들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듣고 이후 기억이 없다.
오랜간의 무의식 상태에서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린다. 간간이 간호사들이 와서 이름을 부르고 대답을 하란다. 들리는 소리가 ”항문이 열였나봐“ ”변이 조금 나오긴 했는데 열리지는 않았어“ ”근데 살아날까?“ ”살 것 같아“ ”글쎄..“ 이런 말이 들리기는 하지만 눈을 뜰수 없고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꼼짝도 할 수 없고 입에는 인공호흡기가 물려있어 말을 할 수 없었다, 간간이 가래를 빼내는 썩션이 나를 힘들게 했다.
의사가 와서 눈을 떠보라하며 ” 할머니 이젠 살았어요“ 내일 인공호흡기 빼드릴게요” 라고했다,“ 그런데 아들이 너무 많이 걱정을 해서 할머니는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씀을 못하시니까 전화기를 귀에 대드릴께요 아드님 말만 들으세요 ”하며 전화기를 귀에 대어주었다. 큰아들이 “ 엄마 이젠 살았어요 사랑해요” 하는데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튿날 호흡기를 떼고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할머니 살아나셨어요 지금부터 치료 잘해야 건강 회복될 수 있으니 힘내세요 ”라고 말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으니 11월 23일 이라고 한다. 내가 병원에 온 날짜는 11월 10일인데 13일만에 눈을 떳다. 두 아들도 격리 치료를 받고 있었기에 병원에서 엄마의 생사를 전화로만 확인하면서 가족 모두가 13일 동안 마음 졸이면서 깨어나길 기도하며 기다렸다고 했다. 깨어나긴 했지만 손도. 발도, 몸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 의사한테 물어보니 스테로이드를 너무 많이 써서 근육이 빠져 그렇다고 했다. 몸무게가 8Kg이나 빠지면서 근육도 함께 빠졌다.
겨우 물과 미음을 맛볼 때 흉통이 찾아왔다. 양쪽 가슴으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픔이 왔다. 기흉이 왔다고 한다. 폐에 기포가 생겨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흐물흐물해진다고 했다. 급하게 흉부외과 과장님이 오셔서 마취도 없이 옆구리를 찢어 폐에 관을 넣었다. 폐를 눌러 기포가 생기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매일 x-ray검사와 코로나검사를 했다. 내가 기억하기에 8번째 검사로 음성이 나와 일반병실로 12월 2일에 옮겨졌다. 아직도 산소호흡기에 소변줄, 그리고 옆구리 관 까지 주렁주렁 달고 병실로 내려와 22일 만에 큰아들을 볼 수 있었다 손에 힘도 없고, 기저귀도 차고, 물도 약도, 음식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간병을 쓰기로 했다. 일주일 길어야 2주 정도면 회복되겠지 했는데 회복이 쉽지 않았다.
관을 뺄 때 까지 13일을 죽을 먹고 밥이 나왔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한 끼는 잘 먹었는데 소화도 안되고 다음끼부터는 씹어도 씹어도 넘어가질 않아 물을 마셔야 겨우 넘길 정도다. 모든 근력이 다 빠져 어디 한 군데도 정상적인 작동이 되지 않는다. 일어나 앉고, 기저귀를 떼고 ,워커 잡고, 한발 한발 걸음마를 걸어본다. 열 발자국도 못가고 숨이차서 주저앉았다. 호흡기 과장이 이건 약도 없고 걸어서 근력을 키워 폐활량을 늘리는 것 외에는 해줄 것이 없다고 한다.
일반병실에 내려와 간병인의 도움으로 20일만에 숟가락으로 잡아보고 물컵도 잡아보았다. 휴대전화로 반가운 이름이 전화를 와도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핸드폰을 들지 못했다. 소변줄을 떼고 휠체어로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10분 서서 버티기 ,자전거 타고 다리 근력 올리기 ,이것도 숨이차서 중간 물을 마셔야 했고 땀으로 범벅이 될 정도로 힘이 들었다. 일반 병실로 내려와 치료비는 자부담이었다.
간병비는 하루 10만원 ,병원비보다 간병비가 부담스러워 12월 31일 퇴원을 했다. 집에와서 보니 내가 할 수 있는게 여기저기 잡고 화장실 출입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워커를 사서 아파트 복도를 조금씩 걷고 조금씩 늘려가며 걷고 또 걸었다.
근력이 빠져 무릎에 꺾여서 힘이 드는데 ,아들이 사준 단백질(셀렉스)를 우유에 2~3술 타서 하루에 한번씩, 아르기닌을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니 조금씩 다리에 힘이 생겼다. 아직도 음식이 맛이 없어 조금씩 먹고있지만, 아들들이 이것저것 사다 주어서 많이 회복되고 있다. 워커도 안 잡고 걸을 수 있게 회복이 빨리지고 있어 감사하다. 집에서는 활동하는데 그냥 저냥 괜찮은데 길을 나가서 걸으면 숨이 찬다. 마스크를 쓰면 더 힘들고 괴롭다, 걸을 때 숨이 찬 것은 폐가 많이 망가졌기 때문에 평생 같이 가야 할 것 같다. 코로나 확진으로 나는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얻은 것은 가족의 사랑이다. 큰아들이 내 손을 꼭 잡고 이야기한다“ 엄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살아만 계셔주세요” 라고... 매일 매일 사는 일상이 당연한 줄로만 알고 살았다, 그러나 코로나 확진으로 매일 같은 일상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다시 한번 느끼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