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노인지원서비스센터에서 사례관리사로 일하고 있는 5년차 사회복지사입니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재가 대상자 어르신들은 고령의 나이로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지내시며 생활의 어려움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어르신을 대상으로 사례관리를 하면서 여러 어르신을 만나 뵙고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어르신은 수십 년 전 잃어버린 아들을 찾느라 거리를 배회하며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생활하던 독거어르신의 이야기입니다. 작년 겨울의 마지막 2월 설 명절을 앞두고 어르신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도 추웠던 날로 기억됩니다. 어르신 집은 쪽방 한 칸에 거주하고 계셨는데 어르신 집 문 앞에서 본 광경은 어르신이 살고 있는 집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모습이였습니다.
그 작은 문고리에 쇠사슬이 여러 차례 감겨져 있었고 쇠사슬 사이로 커다란 자물쇠로 꽁꽁 묶어져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아들을 찾으러 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날은 유난히도 추웠던 날로 기억됩니다.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쇠사슬로 묶여진 문은 더 차갑고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잠겨진 문을 보고 돌아서 나오는데 바로 대문 앞에서 어르신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노인지원서비스센터에서 나온 사회복지사입니다” 인사를 드리고 곧 설 명절이라 쌀을 전달하기 위해 어르신댁에 방문하였다고 말씀 드려더니 어르신은 얼굴을 쳐다보지 않은 채 문 앞에 쌀을 두고 가라고 말씀하시고는 “어서 가요”라는 말씀만 되풀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어르신과 첫 만남 후, 저는 그렇게 홀로 계신 어르신이 걱정이 되어 더 자주 전화를 드리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을 늘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다 통화가 연결이 되면 받는 순간 끊어버리기 일쑤였고, 어르신 댁에 문은 꽁꽁 잠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르신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르신 댁에 쇠사슬과 자물쇠가 없어진 채 비어있는 빈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놀라 주변 이웃과 주인댁에 수소문을 하였고, 어르신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이야기로 어르신이 이웃사람에게 집에 물건을 훔쳐 갔다고 의심하고 아들을 숨긴 거 아니냐며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그 외 이웃과도 다툼이 잦아졌다고 말씀하시면서 결국 어르신이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 후 행정복지센터에 도움을 요청하여 주소를 확인하고 다행히도 멀지 않은 인근에 이사를 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층 주택 쪽방이지만 두 집이 비어있고 혼자 지내는 주택이였습니다. 이사 한지 얼마 되지 않을 때라 짐을 정리 중인 어르신을 만난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사한 집에서도 대문은 쇠사슬과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습니다. 또한 어르신의 집안에도 살림살이 가구마다 자물쇠를 꽁꽁 잠겨져 있었습니다.
어르신에게 “어르신 잘 계셨어요? 갑자기 이사를 가셔셔 많이 걱정했어요. 그래도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하셨네요. 다행이에요, 참 그리고 오늘도 아들 찾으시느라 힘드셨죠.”라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 어르신의 눈은 ‘너는 내 말을 믿어주는 거냐’ 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셨고,
어르신은 지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들이 어릴 적 큰집에 놀러 갔다가 저수지 근처에서 아들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러 방면으로 찾아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아들을 찾고 있으며 귓가에 아들이 “엄마 나 여기 있어요”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밤이면 아들이 찾아와서 배고프고 춥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밥을 못 먹고 거리를 헤매고 있을 아들 생각에 집에만 있을 수 없다고 매일 같이 나가 아들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 이웃이 아들을 데리고 가서 숨긴 것 같다며 집을 비우면 찾아와서 물건을 훔쳐 간다고도 이야기를 하면서 불안해서 자물쇠를 꽁꽁 잠그고 생활하신다고 이야기를 터놓으셨습니다.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어르신의 집 자물쇠는 늘어난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은 그렇게 세상과 등지며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외근을 나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더 찾아가서 문을 두들겼습니다. 어르신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자 어르신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어르신의 힘든 마음을 돕고자 망상 증상과 편집증 치료를 위해 정신보건센터에 의뢰하였습니다.
정신보건센터에서 상담을 나오게 되었고 어르신은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 어르신을 병원에 함께 모시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후 몇 차례 방문을 하여 상담, 어르신을 설득하였으나 어르신은 마음은 고마우나 병원을 가고 싶지 않다며 거절하였습니다.
어르신의 마음을 돕고자 시작한 일이 어르신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약물치료가 아닌 정서적으로 더 지지하여 도움 드리기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덧 어르신의 생일날이 되었습니다. 어르신이 평소 잘 드시지 못한 뼈 해장국, 수제로 만든 마들렌, 특별한 하루를 위한 꽃 을 지역사회에 연계 후원받아 어르신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어르신 생일 축하합니다. ”조용하던 집안에 생일 노래가 울려 펴졌고 어르신은 “내가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생일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는데 너무 고맙다.”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르신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시며 다시 한번 더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 어르신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전화를 받기 시작했고 집에 방문해서도 반겨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르신은 아들을 찾으러 나가거나 시장을 가는 일 외에는 바깥에 나가지 않는 어르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센터에서 하는 소규모 문화 활동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 의사를 여쭙고 함께하자고 말씀드렸더니 조금은 망설였지만 어르신은 참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가 있었습니다. 문화 활동 프로그램 당일 어르신은 꽃 스카프를 하고 분홍 모자를 쓰신 채 너무나도 곱게 차려입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에게 “어르신, 오늘 너무 예쁘세요. 정말 멋쟁이세요.”라고 말씀드리자 어르신은 수줍은 듯 웃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르신은 “가보자.”라고 말씀하셨고 센터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조금은 들뜨고 설레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프로그램에서도 처음 보는 어르신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 함께하는 변화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어르신의 자물쇠는 여전히 꽁꽁 묶어 잠겨져 있습니다. 어쩌면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어르신의 자물쇠는 잠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자물쇠는 하나 내어 주신 것 같습니다.
이중 삼중으로 문을 열어 들어갔던 어르신의 집에서는 이제는 ”어 왔나. 코로나 조심해서 다녀래이“라고 먼저 걱정의 인사도 건네십니다.
또 한 어르신이 아껴두었던 과일을 꺼내 보이며 오면 줄려고 챙겨놨다고 들고 가라고 건네주시기도 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르신 댁에 자물쇠는 차갑고 외롭게만 느껴졌습니다.
다시 한번 돌아보는 지금 어르신 댁에 자물쇠는 어르신을 지켜주는 자물쇠라고 여겨지는 지금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방역수칙 및 안전(감염)의 이유로 사람들은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마음의 거리도 멀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코로나19에도 어르신을 향한 마음의 거리는 누구보다 더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도 어르신의 댁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