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엄마,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해요. 어제 공연 끝나고 함께 저녁 먹은 친구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어요.”
딸 OO이의 전화를 받고 머리가 띵~ 멍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무엇부터 해야 하지?’
갑작스레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음은 분주해졌습니다.
일단 심호흡을 하나, 둘, 셋.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여보, OO이가 코로나 확진자랑 밥을 먹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 대요. 다른 곳 들리지 말고 집으로 오세요.”
서울 고시원에 머물면서 국악기 지도를 받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 주말에 우리 가족이 같이 있었잖아. 누나가 그 전날에 코로나 확진자랑 같이 저녁을 먹었다고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받으라고 연락 왔어. 일단 집으로 와서 같이 검사받자.”
관내에 있는 보건소로 코로나 검사를 가장 빠르게 받을 수 있는 시간대를 알아봤습니다. 각각 맡은 일이 다양한 우리 가족들에게는 여간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온 가족이 일사불란하게 함께 코로나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집안에서 격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행히 온 가족이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격리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휴~~’
OO이의 한숨 소리에 땅이 꺼집니다. 2주를 갇혀 있는 신세가 되어 갑갑하기만 합니다.
예술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예술진흥원 소속으로 초등학교 음악(국악)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3월부터 학교 수업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학교로 가지 못하고 줌이나 영상으로 수업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젠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 수업을 하나 했더니, 자가 격리를 하게 되어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화평이 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동들에게 전염이 된다면 심각한 상황이 됩니다.
33명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오전부터 센터에서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받습니다. 다른 종사자가 더 계시지만, 2주간 격리를 해야 한다니 OO이 엄마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OO아, 그동안 우리가 많이 바쁘게 살았잖니? 위기가 곧 기회가 되는 사람들이 많더라. 우리도 지금 이 기회를 잘 활용해 보자.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고 먼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못 읽었던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센터의 업무는 재택근무로 했습니다.
아이들 국악사업 진행을 위해 공모사업을 쓰지 못했던 사업 제안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의 핑계로 가족들에게 따뜻한 밥 제때 먹이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삼시 세끼를 맛있는 음식으로 가족들을 섬겼습니다.
“엄마, 격리하는 동안에 너무 잘 먹어서 뚱뚱해지겠어요.”라며 평소 맛있는 음식을 즐겨 하는 딸은 제때마다 챙겨 먹는 음식에 행복해집니다.
OO은 한국음악 가야금병창 전공을 했습니다. 국악앙상블을 만들어 대표를 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에 OO 엄마가 다니는 지역아동센터와 협력사업을 구상해보았습니다.
온종일 함께 있으니 생각을 나눌 수 있었고, 사업에 대한 진행들을 순조롭게 공모사업에 신청하여 공모사업에 선정이 되는 놀라운 일도 있었습니다.
아마 격리하지 않았다면 이 공모사업 작성하기도 어려웠고 다양한 국악 수업(가야금병창, 장구, 민요)을 센터 아동들이 배우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서로 바쁘니 한 공간에 있어도 서류 작성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OO은 다양한 영상과 국악 동요도 만들었습니다. 국악에 대한 이모티콘과 캐릭터도 만들었습니다. 학교 ZOOM 수업 또는 영상 수업도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격리하는 동안 영상제작을 위해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기회를 잘 선용하여 유익하고 보람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들 ☆☆은 공군군악대 전역 후 복학하기 위해 서울 고시원에 방을 얻어 연습실에 살았습니다. 꼼짝없이 격리해서 영상으로 지도를 받고, 연습만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격리하는 동안 시간이 많아 생각도 많이 하고 다양한 일을 시도하는 기회가 되었어요.”
한숨을 푹 쉬며 불평으로 가득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자가 격리하기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격리 해제 후, 우리 가족은 마스크를 쓰고 서점을 자주 다닙니다. 코로나로 인해 시간이 생긴 우리 가족에게 새로 생긴 취미생활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위기가 기회다!’라는 글이 명언처럼 새기게 되었으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속담이 절실히 와닿았던 경험이었습니다.
‘코로나’는 모두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을 몇 년이나 앞당겼으며, 온라인 콘텐츠가 다양해졌으며, 가족 간의 소통이 활발해졌으며,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 하지 못했던 것 등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는 전 세계에 많은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을,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과 사업장을,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을 빼앗아 갔습니다. 가족의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과 사람들의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만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스크를 써야만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언제쯤 마스크를 벗고 당당히 다닐 수 있을까요?’
마스크를 자유롭게 벗고 다닐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현재의 코로나로 멈춰진 시간을 즐깁니다. 형식상의 다양한 많은 모임을 이젠 멈추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독서 시간, 자기계발의 시간, 건강을 챙기는 시간 등 유익한 시간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바이러스가 침투하더라도 우리 가족은 자가 격리를 통해 많은 교훈과 이겨 내는 방법을 배워 또 다른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코로나가 아니라 그것을 대처할 수 없는 내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