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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초가 가져다 준 생기 가득한 봄
  • ['코로나19 위기극복' 체험 수기 | 202108ㅣ글 최옥숙님ㅣ그림 정민서님]
코로나19라는 검은 파도가 온 세상을 덮쳤다. 소리 없이 빠른 속도로 전파돼가는 바이러스 앞에 우리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상점가는 썰렁했고,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됐다. 내가 다니던 수영장과 사회복지관도 문을 닫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지난해 2월부터 나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외출을 자제하며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메르스나 신종플루 때처럼 조만간 끝날 거라고 예상했기에, 얼마간은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하지만 금방 끝날 줄로만 알았던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퍼져나가 현재까지 확산일로에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볼일이 있어도 외출을 하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부득이하게 외출을 할 때면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낀 채 최대한 사람들과 접촉을 피해 다녔다. 주변에서 기침이 나올 때면 혹시나 코로나19에 감염되진 않았을까 덜컥 겁부터 났다. 특히 코로나19가 노인들에게 더 위험하고,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더 치명적이라는 뉴스를 보고 난 후부터는 심리적으로 급격히 위축됐다.
외출을 최대한 삼가면서 힘겹게 버티듯 지낸 지 반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여고생 시절부터 50년을 함께 해온 죽마고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 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재난안전문자 알림음 속에서 발견한 반가운 전화벨이었다.
“넌 요즘 어떻게 지내? 난 바깥활동을 전혀 못하니까 가슴이 답답해서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나도 싱그러운 바깥 공기 좀 쐬고 싶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는 한 달에 서너 번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극장도 다녔는데, 그때가 아주 먼 옛날 일처럼 그리워! 우리 언제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까랑까랑하고 당차던 평소와는 달리 친구의 목소리는 습기를 머금은 하늘처럼 잔뜩 무거웠다. 친구는 몇 년 전 위암을 진단받아 수술대에 올랐고 항암치료까지 받았다. 친구는 위암에 걸려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다가, 고혈압과 당뇨까지 있어서 누가 봐도 고위험군 환자였다.
친구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자발적인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고 했다. 일체 바깥활동을 하지 않고 24시간 집에만 붙어있어 우울감이 심하다고 호소했다. 말벗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이들을 출가시키고 혼자 사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TV를 벗 삼아 시간을 보내야 했다. 홀로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외로움과 코로나19 공포가 친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기저질환 때문에 바깥 활동을 하는 자식들과의 접촉도 조심할 정도여서, 무기력과 권태감은 마음이 약해진 친구를 더욱 힘들게 했다.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던 나는 영상통화를 걸어 힘을 내라고 위로했다. 물리적인 거리두기를 한 상태에서 영상통화 말고는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나와 영상통화로 한참동안 수다를 떤 친구는 조금은 환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젖은 솜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친구의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화초를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았다.
평소 꽃을 좋아해 화초를 키우는 나와 달리, 십대 시절부터 선머슴 같았던 친구는 화초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마음을 정화하라며 해피트리 화분과 커피난을 집으로 배달해 주었다. 내 선물을 받은 친구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라며 모처럼 들떠하면서도, 화초를 키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키워야 하냐며 고민을 했다.
나는 친구에게 “화초를 키우는데 적당한 물과 햇빛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마음과 정성을 쏟으면 잘 자라. 해피트리와 커피난이 너에게 화사한 봄을 가져다 줄 거야.”라고 말했다. 화초는 친구가 자식을 키우듯 정성을 쏟아 부은 덕에 아주 잘 자랐다. 친구는 매일 베란다로 나가 화초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내가 보내준 해피트리와 커피난은 친구의 베란다에서 싱그러운 모습으로 쑥쑥 자라났다.
친구는 가끔씩 영상통화를 걸어 “이 아이들 큰 것 좀 봐. 내가 준 정성보다 훨씬 더 잘 자라고 있어. 네 덕분에 화초 키우는 재미도 알게 됐고 우울감도 많이 사라졌어. 집에만 있어도 그렇게 답답하지 않아서 좋아. 친구야, 다 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친구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선물한 화초가 친구에게 화사한 일상을 선물해 주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에 생기 가득한 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친구는 얼마 후 나에게도 화초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친구의 화사한 얼굴을 꼭 닮은 핑크빛 수국 화분이었다.
코로나19 사태는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물리적인 거리두기로 아직 만날 수 없지만, 화분을 매개로 마음만큼은 쭉 이어지는 것 같았다. 화초가 가져다 준 봄바람에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친구와 나는 화초와 꽃을 가꾸면서 서로에게 사랑을 보내고,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힐링해 가고 있다. 나는 오늘도 영상통화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친구에게 응원을 보냈다. “친구야. 조금만 더 힘내. 코로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극복해낼 거야. 내년 봄, 우리 꼭 같이 손 붙잡고 꽃구경 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