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학교사이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서 시작했던 교직이었다. 목표는 수학을 가르치는 것에 있다기 보다는, 수학을 통해 사람을 가르치는 것에 있었다. 물론 수학을 좋아하고 학문적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만큼은 나에게 수학은 학생과 교사로서의 만남을 이어주는 수단이 되어주었다.
제자 A군을 만난 것도 그 과정에서였다. 2010년 처음 고등학교 입학한 그에게 말을 건넸다.
“너가 B양 동생이구나. 누나를 많이 닮진 않았네.”
“네. 안녕하세요. 누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다소 마른 체격에 까무잡잡한 피부의 A군은 당시 학교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유명했던 누나인 B양과 달리 조용한 편이었다. 입학 후 2년여간 A군을 가르치면서 수학은 잘 하지 못했지만,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모습과 인성이 훌륭한 학생이라는 것을 느꼈다. 단지 졸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이었음에도 진로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은 누나와도 비슷했고, 그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무언가 심장이 뛰고 설레는 일들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A야. 졸업 축제 때 비보잉 공연 같이 해볼래?”
“네? 비보잉이요?”
A군 딱히 입시에 대해서 절실한 마음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때부터 A군과 인생의 멘토-멘티로의 깊은 인연이 시작된 듯하다. 그리고 그때에는 몰랐었다. 멘티에 해당했던 이 학생이 훗날 보디빌딩으로 세계대회를 우승하게 되고, 멘티이면서 동시에 멘토의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소싯적 춤을 즐겨 췄었고, 교사가 된 이후에도 학생들에게 방과 후에 비보잉을 취미로 가르치고 있었다. 특히 학교 교육에서 학업적으로 많은 성취나 인정을 받지 못했던 학생들이나 문제아로 불리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섭외해서 가르쳤다. 그런 학생들에게 노력하고 성장하는 경험, 무대에서 환호받을 수 있는 경험,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A군에게도 그런 의도로 말을 건냈던 것이다.
그렇게 수학교사와 수학학습 부진 학생 사이의 기묘한 비보잉 멘토링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너무 재밌어요. 내일은 연습 없어요?” A군은 연습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응. 내일은 내가 출장이 있어서 연습할 수가 없어. 비보잉도 하면서 근력운동도 같이 하면 실력이 금방 늘 거야. 내일 같이 연습이 없을 때는 근력운동도 하고 몸에 대한 공부도 해봐.”
인생에 있어서 정말 큰 전환점이 되는 말들은 때로는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던 말 때문인 경우가 있다. 이때에도 딱히 깊은 의미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A군은 비보잉 연습을 하면서 틈날 때 마다 몸을 만드는 근력 운동을을 병행하기 시작했고, 교실에서 볼 수 없었던 항상 열의에 찬 눈빛을 보여주곤 했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과 성장하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했다. A군은 몸을 쓰는 활동에 재능이 있었고, 연습이 계속 될수록 숨겨진 끼가 점점 드러났다.
긴 연습의 결과로 졸업식 날 비보잉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A군은 평생 받아보지 못했던 큰 환호와 칭찬 속에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또한 그 모든 장면을 보고 그 이상으로 감격스러워하는 A군의 어머님을 마주했다.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아들이 뭐 준비한다는 들었는데, 어설프게 그냥 하는 줄 알았더니,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어요. 저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더라구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선생님, 저는 저기 멀리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양식생물학과에 가게 되었어요. 너무 먼 곳이라, 언제 또 다시 뵙게 될지 모르겠는,,, ”
그 이후 A군은 비보잉과 근력운동을 꾸준히 계속하였다.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안부를 물으며 방학이 되면 꼭 만나서 함께 운동을 했다. 점점 경력이 쌓이면서 A군은 보디빌딩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지역대회를 나가서 입상을 하고,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 A군은 고등학교 시절 축제를 연습하듯 놀라운 집중력으로 운동에 매진하였다. 고민 끝에 운동에 몰입하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군대를 가고, 취업을 하고,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고 만났다. 그리고는 결국 2019년 국내 보디빌딩계의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세계대회 출전권을 따게 되었다.
“선생님. 태어나서 한 번쯤은 꼭 세계대회를 나가고 싶었는데, 저도 제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매번 대회를 준비하고 나가는 과정이 사실 너무 힘들고 고달픈데, 꼭 이번을 마지막으로 후회 남기지 않고 마무리하고 싶어요.”
그렇게 A는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머슬매니아 아메리카 대회에서 우승을 하였다. 하지만 위상과 업적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저 나의 오랜 제자일 뿐이고, 언제나 부르면 찾아오고 서로의 안부를 맞는 스승과 제자, 멘토와 멘티의 관계일 뿐이었다.
“A야. 학교에 보디빌딩 동아리를 만들었어. 시간 되면 와서 학생들 좀 봐 줄 수 있어?”
“물론이죠. 제가 가서 지도도 하고, 영양도 봐주고, 대회도 같이 데려갈게요.”
또 그렇게 내뱉은 A의 말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리라.
실제로 A는 멘티에서 멘토가 되었고, 그의 멘티들은 지금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A는 나에게 큰 교훈을 준 제자이다.
때로는 교실 속의 문제아들은 교실 환경 밖에서는 대단한 모범생이 된다. 지금도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면, A군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어쩌면 너는 다른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이 있을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