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도시락인데. 맛이 어떨지……. ”
도시락을 건네는 그 아이 뒤로 진한 찔레꽃 향이 번졌다. 5월 산천에 흔하게 피는 꽃인데 향이 스친 자리가 면도날에 베인 듯 아리다. 수줍게 도시락을 내밀고 도망가듯 뛰어가는 아이. 꽁꽁 매여진 도시락을 열었다. 16살의 여자아이가 졸업여행을 간다고 새벽부터 일어나 김치볶음밥을 만든 것이다. 참기름을 얼마나 넣었는지 빙그르르 밥알이 돌아다녔다. 김치에 고기 대신 참치를 넣고, 깨소금까지 듬뿍 뿌렸다. 달걀 프라이도 2개나 올렸다.
또래 아이들이 가진 엄살도 투정도 없는 아이. 말갛게 깊기만 한 그 눈이 어릴 적 나와 너무 닮아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아이였다. 당시는 학급 행사 때마다 반장 엄마들이 담임선생님의 점심 도시락을 싸서 보내주던 시대였다. 도시락 신경 쓸 거 없다고 몇 번을 말 했는데, 기어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온 것이다. 현란하게 포장된 도시락들 사이로 나는 그 아이가 만든 김치볶음밥을 내밀었다.
“어머! 정 선생님은 점심이……. 저희 것 같이 드세요.”
“아닙니다. 저는 우리 다희가 준 도시락 있어요. 진짜 맛있게 볶았죠?”
나는 진심이었는데, 선생님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그런데 그 볶음밥 정말 맛있었다. 간도 딱 맞고, 적당히 맵고, 어쩜 달걀 프라이와 조합도 그리 잘 맞는지. 내가 너무도 맛있게 먹었는지 옆자리 강 선생님이 한 숟가락을 거들었다.
“정 선생님, 그렇게 맛있어요?”
“간이 딱 맞아요. 제가 볶아도 이렇게 못할 것 같은데요.”
“그럼, 저도 한 숟가락! 히야! 진짜 맛있네. 야! 진짜 맛있네.”
강 선생님이 한 숟가락 더 먹겠다는 것을 내가 막자, 다른 선생님들도 숟가락을 내밀었다. 그 어떤 도시락보다 우리 다희의 볶음밥이 인기 최고였다. 점심 도시락을 건네고도 뒤 켠 숲에서 계속 나를 흘끗 거리는 다희. 그 아이 뒤로 뽀얗게 영근 찔레꽃이 덩이덩이 피어있었다. 그 향기를 타고 몽글몽글 다희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이! 참! 그만 좀 드세요. 쌤들 도시락 드세요. 저도 아껴 먹고 있는데. 정말!”
나무 뒤편까지 들리게 일부러 크게 너스레를 떨었다. 끝까지 한 숟가락을 더 뺏어 먹은 강 선생님이 연방 히야! 히야! 하며 적당히 효과음까지 넣어 주었다. 다희는 그제야 안심이라도 한 듯 수줍게 웃으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5월의 바람을 타고 찔레꽃 향이 폭죽처럼 쏟아졌다. 하늘도 유달리 맑은 기분 좋은 날이었다.
“다희야! 미안한데. 전교 학생회장은 아닌 것 같다.”
“왜요? 선생님이 왜 말려요? 선생님이 뭔데요?”
“그냥! 전교 학생회는 일도 많고, 학부모님들 참여도 많고.”
“엄마 없고, 아빠 아픈 애는 학생회장 못하는 거예요? 뭐가 그래요?”
이리도 건방지게 달려드는 제자 앞에서도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날카로움 뒤에 숨겨진 속 깊은 상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아닌가? 장애인 아버지의 딸로 살아간다는 것은 슬프다. 가난한데 재능까지 많으면 더 슬프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다희를 말려야 했다.
“그래, 미안! 우리 딸 쌤이 진짜 미안한데, 그냥 우리 반 반장하자. 너 전교 나가면 우리 반은 어떻게 하냐!”
어설픈 나의 설득 앞에서, 그렁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던 16살의 소녀! 세상의 고단함을 알기에는 이른 나이건만, 너무 빨리 철이 든 아이는 담임의 억지 같은 설득을 이해한 듯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그날 그 아이를 부둥켜안고 무능력한 담임으로 나도 한참을 울었다. 그날 그 아이를 부둥켜안고 무능력한 담임으로 나도 한참을 울었다.
버거운 아픔이 많아 그 만큼 눈물도 많았지만 다희는 잘 여문 열매 같았다. 두 달에 한 번씩 아버지 병원 진료 때문에 조퇴를 해야 하는 날에도 수업이 가장 적은 요일로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는 다음날 학급 준비물이며, 청소 당번까지 모두 확인하고서 조퇴를 했다. 담임인 내가 잊을까 봐 배부 될 가정통신문 맨 앞장에 메모까지 남겨두었다. 다희는 나의 제자였지만, 솔직히 나는 그 해 그 아이를 통해 가르친 것 보다 배운 것이 훨씬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졸업식 날. 웅성거리는 가족들 틈에서 정신없는 아이들 사이로 휠체어를 밀고 교실로 향하는 다희를 보았다. 친구들에게 아버지를 소개하는 저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심하게 휘어진 입술로 겨우 인사를 받는 저 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서어생에님- 고오마아스읍니이다.”
힘겹게 꼭꼭 씹어뱉듯 나에게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버지와, 꼿꼿하게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환하게 웃는 다희를 보았다.
다른 선생님들보다는 다희를 조금 더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그해 나는 다희를 통해 아버지의 장애로 한순간도 편하지 못했던, 매순간 부끄러움과 원망에 도망만 치던 유년의 나를 다시 만났고, 여전히 아파하고 있는 그 아이를 위로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희는 매일이 고마운 아이였고, 그래서 매일이 딱한 아이였다. 평생 장애인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한 죄책감에 힘들어하던 나에게 당당히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다희는 오히려 큰 스승이었다.
“저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선생님같이……. 그런데, 그냥 간호학과 갈려고요. 취업도 빠르고, 장학금도 많아요. 아시잖아요. 저 어릴 적부터 한 간호 하는 거요. 호호!”
꽃이 피기에는 너무 이른 계절이었는데, 그 말간 웃음 위로 엷은 찔레꽃 향이 돋았다. 인간의 후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듯, 그날 이후 나는 김치볶음밥에서 종종 찔레꽃 향을 맡았다. 추억이 스민 향은 그렇게 영글어 가끔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내 주변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