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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건없는 배려&유별난 인연
  • ['내 인생 멘토, 멘티와의 소중한 이야기' 수기 | 202208ㅣ글 김지은님ㅣ그림 정하은님]
머리카락과 손톱은 자라는데 저는 그대로입니다. 가정폭력을 피해 새 삶을 살고 싶었던 저희 세 모녀는 제가 18살 무렵 야반도주하여 전주에 왔지만, 머리와 마음에 박힌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30대인 지금도 저를 괴롭힙니다. 세상이 미웠고 사람이 두려웠습니다. 적막한 새벽엔 시간이 흐르는 초침 소리와 엄마의 가냘픈 숨소리가 옥죄어 옵니다.
저는 우울증과 대인기피로 거의 집 밖을 나가지 못했고 “죽을 용기로 살아라”라는 엄마의 말씀은 저에게 어떤 변화도 주지 못했고, 죽을 궁리만 하던 저에게 갑자기 이상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숨을 깊게 들이쉬려고 해도 산소가 들어오질 않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온몸이 발발 떨려 딱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공황이라는 녀석이 찾아왔습니다. 처음 겪는 증상과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두려움, 예고없이 숨이 쉬어지지 않는 증상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공포는 죽으려고 생각했던 저에게 또 다른 무서운 자극이었습니다. 공황이 집에서 시작되어서인지 집에 혼자 있기가 두려워 집보다 밖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쓰러져도 누군가 도와주겠지!’라는 마음이 교차했던 것 같습니다.
주말 더운 여름. 모자와 회색 후드점퍼로 완전무장을 하고 한옥마을 내의 교○미술관으로 가는 길 이었습니다. 모자와 후드 사이로 살짝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혼자일까?’, ‘나도 사람들과 함께이고 싶다,’, ‘사람을 찾는 내가 혼란스럽다.’등의 생각들에 사로잡혀 서둘러 도망가는 중 한 공예품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앞에 서 있으니 누군가 말을 걸어옵니다. 연세가 있으시고 얼굴 주름이 고우신 분이셨습니다. “찬찬히 둘러봐요~ 학생이야?” “아니요.” 순간적으로 놀란 저는 사장님과 눈이 마주쳐버려 어쩔 줄 몰라 땅만 보고 있었습니다. “동물 귀엽죠? 이거는~ 도자기 만들 때 쓰는 흙으로 직접 만든거예요.” 계속되는 말씀에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이리저리 좌판만 둘러보고 있을 때 명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앗! 저랑 이름이 비슷하시네요.”, “그래요? 이름이 뭔데? 진짜 비슷하네.”, “네. 혹시 명함 하나만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 그럼” 신기했습니다. 이름이 비슷한 것도, 제가 명함을 달라고 한 것도.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저도.
선생님과 이야기 하던 중 새로운 공방 장소를 찾아보고 계신 것을 알았고, 마침 제가 사는 곳과 맞아 집 근처 부동산 간판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드렸습니다.“선생님! 아까 이름 비슷했던 객○○길에 사는 사람인데요, 집에 가는 길에 부동산이 있어 사진 찍어 보내드려요.” 선생님께선 “고마워요~ 시간될 때 차도 마시고 하게 공방에 놀러와요~”라고 하셨고, 이를 계기로 선생님과의 시간은 저에게 조건없는 관심과 포용으로 세상에 호기심을 갖게 해주는 시발점이 되어 주셨습니다. 참 감사한 경험들을 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버스 속 모든 상황들이 두려웠습니다. 벨을 누르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고, 벨 눌렀음에도 정차하지 않았을 때, 말하지 못해 하차하지 못할 것 같았고, 승객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삶에 어떠한 의지도 의욕도 없었고, 사람과 숫자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반겨주는 사람과 목적지가 생겼다는 것이 낯설지만 정말 좋았고, 선생님의 공간이 궁금했습니다.
꽃과 나무도 좋아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은이야~ 이리 좀 와봐, 얘네 색깔 좀 봐~ 너무 이쁘지 않니? 옆에 서 봐! 사진 찍어서 우리 단톡방에도 올리자!” 언젠가부터 저에겐 「은이」라는 별칭이 생겼고, 따뜻했습니다. “은아 차 마실래? 향이 좋아~” 항상 도착하면 직접 키우시는 찻잎을 따다가 같이 차를 내려 마셨습니다. 공방에 수강하러 오신 분들과 자주 접하면서 점차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덜어졌고, 버스를 타고 나를 반겨주는 목적지로 향하는 30분가량의 시간은 항상 설렜습니다.
“배 안고파? 우리 텃밭에 상추 뜯어다가 보리밥에 비벼 먹을까? 고추장도 집에 있어. 내가 가지고 나올께~” 엄마와 동생이 아닌 타인과 밥을 같이 먹는 것 자체가 무척 낯설고 어색했던 저는 회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겨내고 싶었습니다. “은이 잘 먹네~ 더 먹어”라는 그 말에 엄청 먹으면서, ‘좋은 사람들과 나도 함께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J시 정신건강복지센터 마음치료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두 살 많은 언니가 어느날 “나도 너 따라서 도자기 만드는데 가도 돼?”, ‘짧은 거리도 아니고... 괜찮을까? 내가 언니랑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세상이 밉고 사람을 두려워하던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을 언니와 함께 하고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네. 언니! 그러면 언니 어머니께 여쭤보시고 같이 가요.”
그렇게 언니와 같이 공방을 다니던 중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은아! 바뻐? 객00길 어00병원에 재능기부 하러가는데 혹시 와서 도와줄 수 있어?” “제가요?? 제가 아직 누군갈 가르칠 수준이 안되는 것 같은데요...”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오늘 화분 만들꺼야, 할 수 있어, 옆에서 보조하면서 환우분들 알려드리면 돼. 어때?” 선생님의 “옆에서”라는 말에 용기를 내어 재능기부에 동참했습니다.
환우분들의 도예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고, 질문도 많았습니다. “선생님 해바라기는 어떻게 만들어요?” 환우분의 질문에 선생님은 “여기 제 보조 선생님이 도와주실꺼예요~.”라며 저를 쳐다 봤을 때 저의 심장은 엄청 뛰었습니다. “꽃잎을 만들 때는 이렇게, 둥글게 만든 뒤, 엄지 검지로 살짝 눌러주고 가운데를 찝어주시면 되요. 이걸 반복해서 만드는거에요.” 긴장한 제가 보이셨나 봅니다. “선생님이 너무 잘 가르쳐주시네~”라는 말씀에 긴장이 좀 풀렸고 목소리에도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지금 상황이 낯설었지만 ‘나도 도움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나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성넘치는 화분을 만든 후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 “똑똑” 휠체어에 앉으신 환우분이 아메리카노 두 잔과 삶은 호박고구마 두 개를 주시면서 “재밌었어요! 감사해요! 또 와주세요.”라며 수줍게 웃으셨던 미소에 제 마음은 또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로 가득 찼습니다. 세상에 혼자였던 저에게 2개의 간식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느끼게 해줬고, 또 와주세요라는 말에 「나도 누군가가 찾아주는구나」라는 생각, 무엇보다도 선생님과 함께 무엇을 해냈다는 느낌, 특히 누군가를 도와줬다는 느낌은 설레다 못해 벅차오르기까지 했습니다.
땅만 보던 저에게 편견없이 경험의 장을 만들어주신 000선생님!! “나이가 들어 이제 체력이 딸려...”라고 하실 때 저는 사실 많이 슬펐습니다. 사랑방이던 공방을 정리하시고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좋아하시던 꽃과 나무, 밭을 가꾸면서 지내시는 선생님! “시간 될 때 한번 놀러와”라는 말씀에 설레임과 편안함을 느낍니다. 여전히 저에게 목적지가 되어주시고 오라오라 해주시는 선생님이 참 감사하고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