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가 품속에 핑크색 포대기를 끌어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포대기 안에서는 생후 한 달여 된 갓난아이가 울고 있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동네에서 가장 큰 슈퍼로 달려가 분유를 사가지고 왔다. 갓난아이는 분유를 먹고 나서야 쩌렁쩌렁한 울음을 멈추었다. 엄마가 뽀득뽀득하게 씻기고 기저귀도 갈아주자, 그제야 갓난아이는 잠이 들었다.
저체중아로 태어나 몸집이 아주 작았던 그 아이는 외삼촌의 사생아였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버리고 먼 곳으로 떠나버렸고, 외삼촌은 무책임하게 아이를 고아원으로 보내려고 했다. 엄마는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보내질 위기에 처한 아이가 측은해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아이에게는 얼마 안 가 ㅇㅇㅇ라는 이름이 생겼다. 엄마는 선희에게 고모엄마가 돼주었고, 나에게는 열다섯 차이 나는 어린 동생이 생겼다. 엄마가 외출을 하면 선희를 돌보는 건 내 담당이었다. 품에 안고 분유를 먹이기도 하고, 울며 보챌 때는 등에 업고 밖으로 나가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선희는 저체중아로 태어났지만, 걱정과는 달리 가족들의 정성 어린 손길로 큰 병치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가족들의 품에 안겨 많은 사랑을 받은 선희는 초등학교이 되었을 무렵, 자신의 출생 배경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나 세상을 원망하거나 부모를 탓하지는 않았다. 또 상처를 티내지 않으려 항상 밝은 미소를 지었다. ㅇㅇㅇ는 웬만해서는 속상한 일을 밖으로 꺼내놓지 않을 정도로 속내가 깊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아빠, 엄마가 없는 애라고 놀려도 가족들 누구에게도 속상한 마음을 꺼내 놓지 않았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차가운 세상에 홀로 던져진 선희는 중학생이 되면서 일찍 철이 들기 시작했다. 교복도 스스로 빨아 입고, 혼날 만한 행동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늘 자신을 키워준 우리 부모님과 나에게 감사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선희는 우리 가족에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나에게도 선희는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랐기에 선희가 세찬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지주대 같은 존재가 돼주고 싶었다. 삶이 고단할 때 따스한 위로를 줄 수 있는 버팀목이자, 삶이 막막해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이고 싶었다. 타지에 나와 살게 된 후로도 나는 주말마다 집으로 내려가 선희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선희와의 대화는 항상 진로와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선희의 부모님에 대한 얘기로 끝을 맺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늘 밝은 모습을 보이던 선희에게도 지독한 사춘기가 찾아왔다. 선희는 이전과는 다르게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 없이 자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정도가 심해져 이유 없이 거짓말을 하거나, 매사 예민하게 굴며 다가오는 가족들을 거칠게 밀어내곤 했다.걷잡을 수 없는 반항이 이어지면서 급기야는 학교에 가지 않고 가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선희가 걱정된 나는 몇 날 며칠에 걸쳐 선희의 친구들을 수소문한 끝에 선희를 찾아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네가 우리집에 온 그날부터 넌 내 동생이야. 가족들이 모두 다 너를 걱정하고 있어. 그러니까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아무리 설득해보아도 요지부동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길 극구 거부하는 선희에게 미리 준비해간 손 편지를 건네주며 꼭 집으로 오라는 당부를 남기고 돌아섰다. <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피고 비에 젖으면서 핀다. 흔들리고 비에 젖어도 꽃은, 결국 아름답게 피어난다. 두려운 순간에 웅크리지 말고, 악착같이 딛고 일어서. 너의 인생에 꽃이 필 그날까지 나는 언제나 네 뒤에 서 있을 거야.>
내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다음날 선희는 우리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다시 돌아와 내 손을 잡아준 선희가 고맙고 대견했다. 그 후 선희는 가슴 속에 자라난 시린 상처들을 조금씩 치유하면서 미래를 위한 꿈을 키워나갔다. 당시 유아잡지사에 다녔던 나는 잡지를 종종 선희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싶다고 말했던 선희가 보육교사가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유아잡지를 함께 읽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결국 선희는 유아교육과에 진학하게 됐다. 비록 내가 보육교사는 아니었지만, 보육교사들을 취재하면서 보고 들은 경험들을 선희에게 들려주었다.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고, 교사들의 경험담을 담은 책도 선물해주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던 선희는 졸업 후 꿈에 그리던 보육교사가 되었다. 당당한 사회인이자 자애로운 보육교사가 된 선희를 우리 가족은 모두 자랑스러워했다.
무엇보다 선희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는 가슴 따뜻한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 앞에서 유독 환해지는 선희의 표정을 볼 때면 선희에게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육교사라는 직업에 얼마나 큰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 취업한 선희는 키워주신 은혜를 갚는다며 어버이날이나 명절, 생신 때가 되면 부모님을 찾아와 선물과 용돈을 챙겨드렸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내 생일에도 어김없이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많지 않은 월급에 적금을 들고 가족들까지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대견했다.
시간이 흘러 얼마 전 선희가 결혼을 했다. 선희를 항상 웃게 해주는 가슴 따뜻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선희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선희는 내 손을 잡고 “언니 덕분에 힘든 순간들 잘 이겨낼 수 있었어요. 항상 든든한 등대처럼 제 곁에 있어 주셔서 고맙고, 정말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나의 진심이 선희의 가슴 속 깊은 곳을 지탱해 주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뿌듯하게 다가왔다
나는 선희를 품에 꼭 안고서 “예쁜 내 동생, 행복하게 잘 살아. 항상 환하게 빛이 날 너의 삶을 응원할게.”라고 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