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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 생긴 형님
  • ['내 인생 멘토, 멘티와의 소중한 이야기' 수기 | 202208ㅣ글 이윤재님ㅣ그림 윤지수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좁은 골목에서 박스를 가득 실은 손수레와 교행하게 되었다. 수레를 피해 최대한 길가로 차를 몰았으나, 손수레와 살짝 닿고 말았다. 그 순간, 수레를 끄는 할아버지가 기우뚱하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얼른 자동차에서 내려 달려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그러면서 할아버지를 일으키려 하자 할아버지는 혼자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있었다. "다치지 않으셨어요? 병원에 가보시죠." 그러자 할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는 괜찮은데 자동차는 어떤가요?"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자신이 넘어졌는데 자동차가 어떠냐고 물으니 말이다. "할아버지 병원부터 가시자고요." "다치지도 않았는데 무슨 병원을 가자는 거요?" 그러더니 손수레를 끌고 가던 길을 그냥 가고 있었다. 이런 황당한 일에 나는 어찌할까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자동차 사고가 난 후 아무 조치도 없이 그냥 돌아가면 뺑소니로 몰릴 수 있다고...' 동료들이 한 그 말이 생각하는 순간 나는 자동차를 골목에 주차시킨 후 할아버지의 손수레를 밀며 따라갔다. 한참 후 할아버지의 손수레가 선 곳은 일명 벌집이라 불리는 동네였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돈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할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다치지 않았다는데 왜 따라온 거예요." 할아버지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집에 들어서자 주변을 살폈다.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조그만 옴팡간이었다. 부엌 바닥에는 라면봉지가 널려 있었고 소주병도 몇 개 뒹굴고 있었다. "할아버지, 여기서 혼자 사세요?"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해보니 할아버지는 독거노인이 분명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보니 우리 나라 독거노인 수가 167만 명이라 했다. 그들의 삶은 겨울에 한파에 부대끼고 여름에 더위에 지친다고 했다. 내가 할아버지의 벌집을 스캔해 본 결과 이 어르신도 나라에서 낸 통계의 한분이 분명했다. 나는 부엌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보니 시중에서 파는 고추장통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냉장고 주워온 것인데 코드 빼놨어요. 전기세가 비싸서...." 그러면서 검연쩍어 하셨다.
“그만 돌아가시오. 다친 곳이 없으니까.” “할아버지, 내일 다시 올 테니까 어디 아픈 곳이 있다 살펴보세요. 오늘은 안 아파도 내일은 아플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니 자꾸 그 분의 부엌에 널려있던 라면봉지가 그려졌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내한테 오늘 일을 이야기하고 김치와 유행이 지난 내 옷 좀 싸달라고 했다. 조금 전 그 분이 입었던 옷이 계절에 맞지도 않았고 남루했기 때문이었다. “왜, 그 분 드리려고요?” “그래요. 어르신이 라면만 드시는 것 같아서…….
“왜, 그 분 드리려고요?” “그래요. 어르신이 라면만 드시는 것 같아서……. 이튿날 나는 마트에서 쌀 한 포대를 구입해 어르신 집으로 향했다. “아니 괜찮다는데 왜 또 온 거에요.” 나는 부엌에 쌀과 김치를 들여놓고 옷 보따리를 풀었다. “이거 제가 입던 옷인데 유행이 지난 옷이에요. 일을 하시는데 입으셔도 괜찮을 거예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고맙다며 방안에 옷을 들여 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이제 그만 오세요. 다치지 않고 멀쩡하니까.” 그러면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듯 두 팔을 들어 보이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자동차 사고가 나면 목부터 잡고 엄살을 떤다. 심지어는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소위 나이롱환자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런 원인으로 우리가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고 들었다. 그 결과 보험료 인상으로 여러 사람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할아버지는 사고 후 다치지 않았다며 그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으셨다.
몸이 아프다고 입원한 후 합의금으로 돈을 요구한다면 그깟 박스 줍는 것에 비하랴!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양심을 선택하신 것이다. 요즘 세상에 그런 어른이 있다니 믿어지질 않았다.할아버지 댁을 다녀온 후 나는 한동안 할아버지를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삼겹살과 소주를 사가지고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전과 달리 무척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걸 전해줘야 하는데 전화번호도 모르고 집도 모르고 그냥 올 때만 기다렸지.” 그러면서 꼬깃꼬깃한 5만 원짜리 두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에요?” “지난번에 전해준 옷 속에 들었더라고 아마 사모님 몰래 감춰둔 비상금이었던 같던데…….”
순간 목에서 큰 덩어리 하나가 밀고 올라왔다. 그리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냥 쓰시지 그랬느냐고 말하려다가 입술을 꾹 물었다. 양심적인 어르신에 대한 모욕적 말인 것 같아서 그랬다. 나는 그 돈을 받았다. 그리고 그 날 어르신과 함께 부뚜막에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한 잔 하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그래, 저런 어른을 형님으로 모시고 안전을 돌봐드리자. 그리고 멘토로 모시고 그 분의 아름다운 마음을 본받도록 하자’ 예전 부산의 초량동에서 독거노인이 보이지 않아 그 집을 찾아가 봤다고 했다. 그런데 독거노인이 숨져있었는데 숨진 지 몇 달이 지난 후였다고 했다. 아무도 그 독거노인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약자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그 분이 찾아준 돈으로 어르신의 속옷을 샀다. 무엇이든 나누어 먹고, 나누어 입어도 속옷만은 그럴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며칠 후 나는 속옷과 삼겹살을 사가지고 어르신 집을 찾았다. “형님 선물 드릴게요.” 그러면서 속옷을 드리고 부뚜막에서 삼겹살을 구워 맛있게 먹었다. “지금까지 할아버지라 부르기도 하고, 때론 어르신이라 불렀는데 이제는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어때요, 허락하실거죠?”
그렇게 그날 우리는 형님 동생 하는 처지로 발전했다. 그리고 서로 자주 만나 삼겹살 파티를 벌이며 세상의 모든 일을 상의하기로 약속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살고 있지만 우리 형님같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돈 10만원 별것도 아니지만 내 것이 아니니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이다. 하루 종일 박스를 주워봐야 얼마겠는가? 그런데 형님은 양심을 지킨 것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이 많으면 좋을 텐데……. 나는 앞으로 형님을 선생님처럼 모시며 늦게나마 그 분의 아름다운 인성을 본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