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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히려 내가
  • ['나의 나눔 실천 이야기' 수기 | 202307ㅣ글 이재숙님ㅣ그림 배유진님]
토요일 아침이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산 중턱에 있는 학교에 가는 길은 등산과 다를 바가 없었다. 조금만 걸어 올랐는데도 벌써 콧등에 땀이 촉촉하게 맺혔다. 교문에 들어서니 학교 현관에 OO이 엄마가 막 들어가고 있었다. ‘같이 가.’하고 소리치니 OO이 엄마가 뒤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숨 고르기 할 새도 없이 서둘러 학교 조리실로 향했다. 날이 더워지니 일찍 일을 마치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았다.
반찬을 만드는 날이었다. 열일곱 명 집의 반찬을 조리해야 했다. 조리실에는 네 명의 엄마가 먼저 와 있었다. 벌써 커다란 솥을 씻거나 재료를 테이블에 널부려 놓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바탕 손을 흔들고 야단법석을 떨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어묵국에 오징어무침과 콩나물무침, 멸치와 아몬드 볶음, 돼지고기 야채볶음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나는 돼지고기 야채볶음을 맡았다. 각자 자기가 할 일이 정해지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할 일을 찾아 자리를 떴다. 나도 재료들을 부스럭부스럭 뒤지며 돼지고기며 양파, 파 등을 꺼내 들고 테이블 하나를 차지했다. 커다란 도마와 칼을 씻어 그 위에 돼지를 고기를 넣고 썰기 시작했다.
커다란 팬에 고기를 넣고 볶으면서 한 손으로 팬을 들었다 놓으며 요리했다. 다른 엄마들이 프라이팬 다루는 것을 보니 주부는 맞는가 보다며 흉인지 칭찬인지를 해댔다. OO이 엄마는 대접만 한 국자로 국을 떠서 간을 보라며 들고 다녔고, □□엄마는 콩나물이 생각보다 질기다며 안타까워하면서 맛을 보았다. 그러다 콩나물 다 먹겠다는 말에 모두 깔깔깔 웃었다. 서로를 격려하고 솜씨도 자랑하며 바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다. 어쩌다 보니 어머니회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학교 일과 아이들 생활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러다 제법 많은 아이가 아침과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급식이 제대로 먹는 유일한 식사라는 것을 알고 나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들은 내 아이의 친구가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뭐라도 챙겨주고 싶었다.
뜻있는 엄마들이 여섯이 모였다. 학교 도움을 받아 반찬을 만들기로 했다. 아이의 사생활을 생각해서 반찬을 만들어 집에 가져다주고, 건네준 빈 그릇을 수거하는 방식을 생각해 냈다. 네 명의 가족을 기준으로 반찬을 준비하기로 했다. 몇 아이는 내 아이의 친구라서 얼굴과 집을 알고 나머지는 학년이 다르고 모르는 아이였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반찬을 해서 집에 가져다주고 빈 그릇을 가져올 뿐.
아이들은 토요일이면 현관이나 마루에 빈 그릇을 두었다. 몇 아이는 기다렸다가 빈 반찬통과 새로 한 반찬을 교환하며 인사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쭈뼛쭈뼛하는 아이에게 언제 반찬이 올지 모르니 마음 편하게 놀러 가라고 일러 주었다. 그다음부터 아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몇 달이 흘렀다. 교장선생님이 들렀다. 반찬 만들기를 끝내고 뒷정리도 말끔히 끝낸 후 각자 맡은 곳으로 반찬을 전해주러 갈 일만 남았을 때였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이 와서 슬쩍 건네고 간 편지라며 건네주었다. 그 아이의 편지가 우리를 울렸다.
그 편지를 쓴 학생은 삼 학년이었고 중학교 일 학년인 여동생과 아버지, 이렇게 세 식구가 같이 산단다. 반찬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침에는 굶거나 시리얼을 먹는데 그것도 지겨워서 안 먹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아침을 안 먹다 보니 습관이 돼서 이젠 괜찮다면서. 점심은 학교에서 최대한 든든하게 먹으려고 했단다. 저녁에는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 먹거나 컵라면으로 때운다고 했다.
주말이 사실 제일 힘들었는데, 주로 나가서 친구들과 놀면서 떡볶이나 햄버거를 먹는 것으로 끼니를 채웠다고 했다. 아버지도 아침에는 빈속으로 나가고 저녁에는 늦게 들어왔으며 술을 마시고 오거나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가족이 셋밖에 없는데도 가족이 모두 모이는 경우가 없었다. 편지지 두 장 가득 사춘기 소녀의 촘촘한 글씨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반찬을 준다고 했을 때 처음엔 기분이 나빴어요. 거지도 아니고 다른 아이들이 알까 봐 싫었거든요. 따뜻한 국이랑 반찬이 집 앞에 놓여서 가지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배가 고팠어요. 잘 못하지만 오랜만에 밥을 했어요. 밥상을 펴서 반찬을 덜어놓고 밥을 먹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서 동생하고 밥 먹으면서 울었어요. 냉장고에 남은 반찬을 넣었는데 부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처음엔 수요일이 되기도 전에 반찬이 다 떨어져서 목요일부터는 다시 굶었어요. 두 번째 세 번째 반찬을 받으면서 요령이 생겼어요. 조금씩 나누어 먹게 되었지요. 그리고 계란프라이를 하고 김을 사서 같이 먹게 되었어요. 반찬을 조금씩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잘 안돼요. 무엇보다 좋은 것은 아버지와 밥을 먹게 된 것입니다. 셋이 모여서 밥 먹어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가끔은 아버지랑 밥을 먹으려고 저녁을 안 먹고 기다려요. 저번에는 아버지가 밥을 했어요. 제가 반찬을 놓고 동생이 숟가락을 놓았어요. 세 식구가 같이 밥을 먹게 된 것이 제일 좋습니다. 동생은 행복하다며 밥 먹으면서 울었어요. 감사합니다. 가족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편지는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전해졌고, 편지가 지나간 후에는 모두 눈물을 닦고 있었다. 단 한 명의 마음은 몇 달간의 바빴던 우리의 하루를 보석처럼 빛나게 해주었다. ‘아, 이런 걸 보람이라고 하는구나.’ 하며 우리는 오히려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그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세상살이가 어찌 일방통행이겠는가. 주는 것이 어찌 주기만 하는 것이겠는가.
어떤 일을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봉사라고 한다. 나는 세상에는 주는 것이든 받는 것이든 공짜가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반드시 대가가 있다. 그리고 대가는 마치 눈덩이 굴리듯 점점 커져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그 아이가 설거지해서 건네준 빈 통엔 우리가 담은 반찬보다 훨씬 크고 값진 것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아이로 인해 내 존재의 의미를 발견했고, 내게도 사랑이 있음을 확인했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게 되었고, 살면서 주변을 돌아볼 기회와 여유를 얻었다. 모두 아이들 덕분이었다. 내가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