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센터

  • 괜찮아요
  • ['나의 나눔 실천 이야기' 수기 | 202307ㅣ글 김성님ㅣ그림 김성민님]
40대 초반에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는 2018년 7월 폭염경보의 어느날. 외부 행사지원으로 근무하다 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두통과 현기증으로 그 자리에 쓰러지며 직원들의 도움으로 구급차에 실려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 되었어요.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메며 3일만에 깨어난 저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어요. 아무리 움직이려해도 움직이지않는 팔과 다리.
저의 진단명은 급성 뇌출혈이었어요. 그말에 숨이 쉬어지지않는 호릅곤란에 구토까지하며 두려움만이 가득한 시간이었죠. 정말 제 힘으로 할수 있는건 입을 벌려 말하는것뿐이고,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움직일수 없었어요. 기저귀를 차고 대소변을 봐야헸고 어미새의 먹이를 기다리듯이 보호자가 떠주는 미음에 한껏 입을 벌리고 있어야하는 수치심과 치욕을 느끼며, 몇 번이고 그냥 나 좀 죽여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다 실신하는 일들도 빈번했죠. 그렇게 중환자실과 집중치료을 거쳐 일반병실까지 2개월의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죠. 그러던중 재활을 위해 재활전문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새로운 공간. 이곳의 풍경은 다른 병원과는 많이 달랐어요. 전부 장애를 겪고 계신분들만 계셨어요. 이런 모습이 제게 희망보다는 오히려 좌절만 더 안겨주었죠. 왜냐하면 같은 병실에 계신 환자분들이 짧게는 3년 길게는 8년을 이곳에서 재활만 하고 있다는거에요.
보호자나 간병인 없이는 혼자 할수 있는게 없다보니 사회와 가정으로의 복귀가 어려웠고, 병원에서는 숙식부터 고정적인 치료와 응급상황에 대처할수 있는 안정된 시스템이다 보니 다들 포기하고 현재의 편안함을 선택하고 계시더라고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어떻게 참고 몇 년씩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기면서도 ‘나도 이렇게 되겠지?’하는 두렴움이 공존했죠. 6개월쯤 되었을 때 장애(뇌병변3급)진단을 받으며 저는 인생이 끝난것처럼 삶을 비관하고 치료를 포기하며 온종일 침대에 누워 창밖 하늘만보며 눈물만 흘리고 아까운 시간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던중 80대 정도의 환자분이 휠채어를 끄시고 제 병실로 들어오셨죠. 그리곤 제 앞까지 오셔서 “청년, 울지말고 기운차려야지.뭐든해봐, 아직 젊은데 뭐가 걱정이야?”하시곤 들릴 듯 말 듯 노래를 흥얼 거리시면서 병실을 나가시는거에요. “뭐야?”저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다시 누웠고 밤이 찾아 왔어요. 정말 이상하게도 낮에 그 어르신 말씀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있기에는 너무 비겁하고 살아갈 날들이 많았기에 더 생각이 났던 것 같아요.다음날부터 저는 어디서 힘이 생겼는지 선생님들께 질문을하기 시작하고 중간중간 남는 시간마다 유트브 동영상으로 재활훈련법등을 공부하고 재활의 의지를 불태우며 정말 열심히 훈련에 임했어요.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을때면 신기하게도 그 어르신이 나오셔서 제 어깨를 한번 만져주시고 “잘될 거야 청년.잘되고말고”하시며 용기를 주셨고 저는 휠체어에 앉아 몇 번이고 감사하다 인사를 올렸지요. 그렇게 3개월이 더 지날때쯤 신기하게도 제 오른손과 오른발에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았어요.그러고 또 2개월이 나났을 때 저는 오른손으로 밥을 먹을수 있었고 지팡이로 의지하며 제자리에 설수 있었어요. 잊을수 없는 날이었죠.
선생님들과 부둥켜 안고 정말 많이 울었고,이사실에 수화기 넘어 가족들도 목 놓아 울고 또 울었죠. 그렇게 계속 훈련을하고 있을 때 알게 되었죠. 그 어르신이 안보이시는거에요. 제 의지에 초석을 다져주신 감사한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했는데 갑자기 안보이시니 너무 궁금했죠.
그리고 알게된 사실. 어르신은 오랜시간 알츠하이머 질환으로 투병중이셨고 몇일전 갑자기 증상이 심해지셔서 더 큰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셨다는거에요. 제가 이렇게 도움을 받았다하니 간호사분들이 놀라시는거에요. 어르신은 가족분들도 못알아보시고 말씀도 거의 안하신다는거죠. 어르신께서 저를 위해 있는 힘을 다 내어 주셨구나 생각하며 얼릉 건강해지시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어요. 다시 상쾌한 아침이 밝았네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어르신이 제게 해주셨던것처럼 병원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게 “힘내세요”“분명 잘될꺼니까 걱정마세요”라는 응원을하고 있더라고요.
평생동안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본적없는 제가 이럴수 있다는 사실에 저 또한 놀라지않을수 없었죠. 이런 메시지가 재능기부 아닐까 생각하며 제가 그랬던것처럼 관심과 응원의 말한마디가 어두운 터널안을 탈출할수 있는 작은 손전등 역할이라도 되어주면 좋겠다 생각하고 13개월동안의 재활을 마치고 퇴원할때까지 계속 이어졌죠.퇴원후 6개월정도 지났을 때 병원 자체에서 진행한 재활공모전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본인의 재활이야기로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우분들게 용기를 주자는 취지와 작은 책자를 만들어 병원 내 누구나 볼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지요. 정말 의미있는 공모전이기에 참가했고, 제가 대상을 받았어요.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현재 다시 복직을하고 열심히 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는 4급장애로 좌측을 못쓰지만 절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아요. 그저 전보다 조금 느리다는것과 그 느림의 이유가 내가 과거보다 좀 더 신중해졌구나하는 제 나름의 해석으로 풀어내는거죠. 이 세상 존재하는것중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게 있나요? 저는 오늘도 느리지만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어요.
생각한데로의 결과로 행복해하는 이에게는 그동안 노력한 당신의 노고로 이루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러기에 나 또한 축하하며 응원하다고 말이죠. 생각한데로 안되어 낙심하는 이에게는 벌써부터 실망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시간중 지금의 시간은 극히 일부이며 이제 시작일뿐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느 어르신의 소중한 말한마디가 한사람의 삶을 바꿔놓았다는 제 이야기를 말이죠. 저의 50년 가까운 시간속 단 1분. 그 1분속 말한마디의 힘을 경험한 사람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