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사는 사람이 신선한 야채를 매일 챙겨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지금은 1인용 야채팩을 편의점에서도 손쉽게 살 수 있다지만, 15년전 대학 자취하던 시절엔 소분된 야채를 사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대학생의 얇은 지갑이 감당하기엔 야채값이 터무니없이 비싸 싱싱한 야채는 항상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로콜리가 먹고 싶지만… 이 가격이면 식빵이 한 줄이야. 야채가 먹고싶지만 참아야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한 나는 여기저기 발품을 판 결과 1층엔 예쁜 카페가 있고 3층엔 주인 아주머니가 살고 계시는 아담하고 예쁜 원룸2층에서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우리 원룸은 옥상 정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나는 이 집을 보자마자 마음을 사로잡혔답니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파란 잔디를 밟고, 텃밭의 싱그러운 야채를 구경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부지런한 아줌마는 텃밭을 아주 열심히 가꾸셨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상추와 깻잎, 방울토마토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게 구경하곤 했습니다.
“채식주의자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원래도 야채를 좋아했던 나는 아줌마의 텃밭이 내심 부럽기도 했습니다. ‘아줌마는 좋겠다. 날마다 신선한 야채 드실 수 있어서…’
‘이상하다. 부지런한 아줌마가 왠일이지? 잡초가 이렇게 한가득 퍼지게 그냥 두실 분이 아닌데…’옥상정원 벤치에 앉아 푸릇푸릇한 잔디 밭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있던 나는 텃밭을 보며 고개를 갸웃 했습니다. 1년 넘게 이 원룸에 살면서 텃밭이 이렇게나 엉망진창인 적은 없었거든요.
상추인지 잡초인지 구별도 안되게 마구 뒤엉킨 상추며, 금방이라도 꺾일 것처럼 목이 축 쳐져있는 고추들이 아주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부지런하기론 어디가도 빠지지 않는 나는 옥상 한켠에 있던 호미를 들고 밭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잡초를 뽑기 시작했고 시골에서 부모님이 키우시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자란 나는 고추 지지대 작업도 어렵잖게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상추야, 고추야~! 무럭무럭 자라서 맛있게 식탁에 오르렴. 이렇게 싱싱한 야채를 매일 먹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식비도 아끼고 말이야. 그거 아니? 마트에 가면 야채가 너~무 비싼거. 나처럼 가난한 대학생은 싱싱한 야채는 꿈도 못꾸는 일이란다.”
♫ 룰루 랄라~ 흥얼흥얼~♬
따고, 캐고 심는 농사일이 ‘노동’ 보다는 ‘재미있는 미션’처럼 느껴졌던 나는 평소에도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자주 거들었기에 아줌마네 텃밭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고, 상추랑 고추한테 말을 걸었나 봅니다. 평화로운 이 옥상에 나만 있는 게 아닌데, 그땐 꿈에도 몰랐답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세며 생활비를 충당했던 나는 월말이 가까워지면 돈이 다 떨어져서 조금 허덕여야 했습니다. 아줌마네 텃밭 작업을 한 다음날, 대학 수업에 과외 알바 2개를 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서 빨리 라면으로 허기를 떼워야 겠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던 기억이 납니다. 원룸 오기 전 청과물 가게를 지나치며 한 소쿠리 가득 담긴 상추랑 오이를 보며 군침을 흘렸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 달 과외비 받으면 야채랑 과일 한 바구니 사다 먹어야지!’
계단을 다 올라 우리 집 현관 손잡이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깨끗하게 씻긴 상추랑 깻잎! 한 봉지 가득 든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보며 마트에서 배달을 잘못 하셨구나라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네 집에 온 걸까 봉지를 보던 내 눈에 정갈하게 써진 쪽지가 보였습니다.“우렁각시 201호 아가씨에게”라는 글자를 보며 나는 봉지를 들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201호는 분명 우리집이 맞았으니까요.
요 며칠 몸이 안좋아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3층 주인 아주머니는 안그래도 엉망진창이 되었을 텃밭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놀면 뭐하니’ 하는 생각으로 그냥 호미를 들고 밭을 좀 정리했을 뿐인데, 퇴원 후 무거운 몸을 끌고 옥상에 올라오신 아줌마에겐 내가 꼭 전래동화에 나오는 우렁각시처럼 보였다나요. 내 작은 일이 아줌마에겐 큰 힘이 되었다며 감사했다는 쪽지 내용에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내가 큰 일을 한 것 같아 한없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가씨! 혼잣말 하는 거 들었어요. 그렇게 야채가 먹고 싶었다는 말에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는 우리 막내딸 생각이 나더라고. 상추 한 두 장 그냥 따가도 티도 안나고 모를 일인데 그렇게 침을 꼴딱꼴딱 삼키면서도 아무것도 탐내지 않는 마음이 너무 예쁘고 순수해 보였어요. 혼자 사는데 상추 씻는 것도 일이라서 내가 우리집 거 씻으면서 깨끗이 씻은거니까 싱싱할 때 맛있게 먹어요!”
아줌마가 선물해 주신 싱싱한 야채 꾸러미! 이건 단순한 야채가 아니었습니다. 지친 대학생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배려의 손길이자, 세상은 이렇게 따뜻하고 정이 넘친다는 응원과 격려였답니다.
안 그래도 혼자 자취하면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으리란 결심으로 혼자 아등바등 동동거리고 살던 나에게 그날 아줌마가 준 야채는 싱싱한 먹거리를 넘어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초록 밥상을 마주했고 상추와 오이에서 나오는 그 신선한 기운이 내 온몸에 흡수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와 아줌마는 환상의 짝꿍이 되었답니다. 텃밭에서 마주친 어느날 자연스럽게 나는 손을 걷어 부치고 텃밭 작업을 도왔고, 아줌마는 봉지가 터지게 온갖 야채를 바리바리 싸주셨거든요. 그렇게 따뜻했던 그 보금자리에서 4년 대학생활을 잘 했고, 15년이 훌쩍 지나 지금의 나는 먹고 싶은 야채며 과일은 플렉스 할 수 있는 멋진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건강하고 체력이 좋은 건, 20대 초반 풋풋했던 그 시절 나를 아끼고 사랑했던 주인 아줌마가 주신 사랑의 야채들이 내 몸의 자양분이 된 결과 아닐까요?
마트에서 싱싱한 야채를 볼 때마다 나는 그 때 그 옥상 텃밭을 떠올립니다.
더불어 가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했던 일이 다른 사람에겐 말도 못하게 고마운 일이 될 수도 있고, 나에겐 별 것도 아닌 야채 한 봉지가 가난한 대학생에겐 귀하디 귀한 한 끼 밥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인 것 처럼요. ‘같이’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들이 모여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