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봄 어느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에서였다. 막 수업이 끝난 열 살 짜리 OO가 긴 물뿌리개로 운동장 옆 큰 사과나무 밑동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내가 지어준 OO의 별명은 사과 꽃이다. OO는 가는 물줄기로는 그 사과나무에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사과나무 꽃잎들은 OO가 고마웠는지 바람의 세기에 비해 크게 흔들렸다. 하양과 연분홍의 흐드러진 춤 같았다.
"사과 꽃 OO야, 거기서 혼자 뭐하고 있니?"
"사과나무에 물을 주고 있어요. 사과 꽃이 저처럼 너무 예뻐요."
나는 OO에게 다가가 아는 체를 했다. 곧바로 지수다운 귀엽고 순박한 답신이 돌아왔다. 내게 목례만 하고 아까부터 조심스레 곁에 서 계시던 지수 엄마가 쓸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우리를 망보던 오후의 햇발도 사부작거리며 넌지시 근황을 물었다. 한참 후 OO 엄마가 집에 갈 생각이 없는 OO에게 사정을 하며 OO의 팔을 끌어당겼다. 걸어가는 모녀의 등에 5월이 쓸쓸히 나풀거렸다.
나는 작년 초 이 특수학교에 발령이 났다. 그런데 우리 교육행정직 입장에서는 업무 외 신경 쓸 일이 많아 그리 선호하지 않는 근무지다. 그러나 나는 자폐인 지적 장애 사촌 오빠의 아픔을 떠올리며 자원했었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아이들의 독특한 행동에 적이 놀랐다. 그 곳 아이들은 갑자기 큰 소리를 치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거나 어디론가 숨곤 한다. 그때마다 우리 직원들은 아이들을 제지하거나 모두 술래가 되어 찾느라 비상이 걸린다. 그렇게 일상에서 적절한 마침표 대신 삐뚤빼뚤한 쉼표가 이리저리 나풀거린다. 그러나 그 아이들에게는 교활한 배후가 없어 나는 좋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운동장에서 넘어질 듯 나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왔다. 마침 점심을 먹고 운동장 휴게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그 아이에게 조심하라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그 아이는 살갑게 다가오더니 가뿐 호흡 틈새로 묻지도 않은 이름을 대며 인사를 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이모와 조카 사이가 되었다. 나중에야 OO 어머니와 내가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가끔 OO와 함께 학교 뒷산을 산책했다. 사실 특수학교 교사가 아닌 내가 아이들과 산책하는 것은 내 고유한 직무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 OO에게 내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OO는 평소 숲에만 들어서면 수다스러워졌다. 그날도 깨금발로 서서 특이한 소리로 야호를 외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돌아온 메아리에는 OO의 부르튼 상처 같은 얼룩덜룩한 아우성이 묻어 있었다.
나는 짠한 마음에 OO를 안아주었다. 한참을 걷자 벚꽃나무 아래 놓인 허름한 긴 벤치에 두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그런데 갑자기 OO가 숲을 향해 팔을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파르르 놀란 큰 호랑나비가 세차게 날개 짓을 하며 다급히 도망쳤다. 나는 그 벚꽃나무 옆 작은 엄나무 가시에 나비가 앉아있는 줄도 몰랐다. 하마터면 쫓기던 나비의 날개가 그 가시에 찔릴 뻔했다.
“생각이 없는 살짝 이상한 아이네!”
“생각이 없는 아이가 아니고 생각이 순수한 아이예요!”
그런데 갑자기 그 벤치에 앉아 있던 할머니 중 한 분이 OO를 비난하며 버럭 화를 냈다. 나도 그 무례한 말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OO가 놀라지 않도록 얼른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그러나 이미 놀란 OO가 벌벌 떨었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안타까운 현주소였다.
숲이 깊어갈수록 초록은 더 짙어가고 나뭇잎의 그림자는 두꺼워졌다. 한참을 걷던 OO가 키가 비슷한 두 꽃나무를 어루만지며 사이좋게 피었다고 말했다. OO는 이전에는 숲에서 두 그루 꽃이 바짝 붙어 있으면 서로 싸운다고 했었다. 나는 아이의 자폐가 다행히 악화되지는 않은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숲을 산책하는 내내 OO는 내게 받침이 뭉그러진 말로 질문하며 새끼손가락을 걸어왔다. OO는 내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 때면 꼭 새끼손가락을 불쑥 내민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보다 세심한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장애인들을 무조건 돕는다기보다 사회는 한 마음으로 그분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자립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에 대한 대책도 현실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 아이들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또래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언뜻 동병상련의 마음을 함께 나눌 것 같지만 심드렁하게 자신들만의 세상을 살아간다. 각자 팔다리를 반복하여 움직이거나 자신만의 특별한 걸음으로 생각을 전한다. 나는 그 모습이 애면글면 힘겹다는 신호란 것을 알기에 가슴이 참 아리다.
또한 자폐성 장애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발을 밟는 등 실수를 자주 한다. 그때마다 함께 있는 그 부모님들은 매번 아이 대신 황급히 사과하기 바쁘시다. 사과 꽃 OO의 부모님은 자주 사과할 일이 없었으면 참 좋겠다. 그 사과(沙果)와 사과(謝過) 사이에서 비틀거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만성 우울증을 앓는다. 더욱이 자녀 보육에 대한 스트레스로 적지 않은 가정들이 안타깝게도 해체되기도 한다. 참 가슴 쓰라린 일이다.
이 오후, 나는 그믐의 낮달 아래 졸고 있는 작약 꽃향내를 맡고 있다. 이제 내가 전근을 가면 OO와는 헤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서로의 사랑만큼은 헤어지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예전에도 나는 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보면 유독 마음이 아팠었다. 그러나 OO를 만난 후로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내 눈과 마음이 더욱 따스해졌다.
“OO야, 선생님은 너를 너무 사랑해! 자! 새끼손가락 걸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