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 모든 것이 허무해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조그마한 학원을 운영을 하며 매출에 일희일비 하는 삶도 지겨웠고, 마치 산다는 게 바위를 산꼭대기로 끊임없이 밀어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엄청난 형벌로 느껴졌다.그 이유는 아마 이제 막 나이 막 나이 마흔을 넘겼고,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도 헤어졌으며 친했던 친구들은 이사와 결혼으로 자연스럽게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뭔가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느낌이었다.
혼자사는 데 돈이라도 있어야 하나 싶어서 재테크에도 기웃거렸지만 그럴수록 더욱 남과 비교하고 삶에 대한 조급증에 지칠 뿐이었다. 돈과는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오래도록 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떤 대가없이 내가 쓰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생각은 나의 능력이 사회에 환원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결론으로 도출됐다. 단발성 봉사가 아니라 꾸준히 하려면 거리도 내가 사는 곳이랑 가까워야만 했다. 그리고 며칠이 더 흘렀을까. 우연히 서울 주변의 캠핑장을 찾았다가 근처에 서울 남부교도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머릿속에는 ‘이거다’ 라는 생각이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아무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사람들을 위해서 영어 재능기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교도소의 홈페이지를 검색한 뒤, 몇 주를 더 망설였다. 내가 꾸준히 할 수 있을까, 순간적인 감정으로 시작했다가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자신과 각오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했다. 마침 준비가 되었을 때 담당 교도관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곧 소년수 담당 교도관님으로부터 이메일과 전화를 받았다. 서울 남부교도소 내에 만델라 학교라는 소년수들을 위한 교정시설이 있다.
서울 남부교도소에 소년수가 따로 있는지, 교정시설이 있는지도 모두 금시초문이었다. 화요일 오후 1시 50분부터 2시 40분까지가 일주일 중 하루, 한시간 내가 소년수들과 영어선생과 학생으로 만나는 시간이다. 그리고 내 결심에 불을 지피고자 주위사람들에게 활동을 선언했다. 부모님을 빼고는 모두가 반대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빠 역시 은퇴후 청주의 여자교도소에서 소녀수들에게 오래도록 영어를 가르치신 일이 생각났다.
- 딸아, 잘 결심했다. 애들은 열두번도 더 변한다. 좋은 맘으로 좋게 가르치면 걔네들 인생도 좋게 변할거다. 아빠의 응원 또한 나에겐 큰 힘이 되었다. 내가 만나게 될 소년수들이 어떤 모습일지 영어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설레고 걱정되고 두렵고 긴장됐다.
첫날이었다. 내부규칙에 따라서 휴대폰과 신분증을 입구에서 반납 해야 하고, 교실 안으로는 개인 소지품을 들어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소년수들은 하늘색 죄수복을 입은 채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앞에 서 있는 내가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교도관님이 영어 재능기부를 해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해 주시고 뒤로 가셨다. 그때 소년수들 몇몇이 질문을 던졌다.
- 선생님 돈 많아요? 왜 재능기부 하시는 거에요? - 선생님 뭐 기부 천사 이런거에요? 뭐하시는 분인데요?- 돈은 열심히 벌고 있지만 부자는 아니고…돈과 상관없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왔어. 돈만 생각하면서 사는 삶은 너무 후진 거 같아서 대가 없는 일을 해보려고 왔어.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보려고. 너네들이 너무 궁금해서 왔어.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일주일에 한번씩은 꾸준히 보고 싶다.내 입에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고, 소년수들은 돌연 숙연해졌다. 그 뒤로 몇 번의 수업을 더 하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대답도 잘하고 영어도 곧잘하는 이 어린 친구들이 열심히 잘 살고 사회에 나가서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보통 나쁜짓해서 들어오는 곳이 아닐텐데 큰 죄를 짓고 들어온 죄수들의 밝은 앞날을 빌어도 되는 걸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흘끔 뒤에 앉아계신 교도관님을 쳐다보았다. 편하게 말씀하라는 눈짓에 나는 길게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그러나 진실된 마음이 튀어나왔다.
두달 가까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보는 나의 시각이 바뀌었다. 더 이상은 혼란스럽지 않고, 소년수들의 건강과 안녕, 그리고 사회로 나간 그들이 다시는 교도소에 수감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십명의 아이들을 고작 주 1회, 1시간씩 만나는 나의 행동이 그들의 인생에 뭐 얼마나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회의가 올라올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긍정의 힘을 믿기로 했다. 어린 시절 만난 선생님의 한마디로 인생의 진로가 바뀌기도 하는 것처럼 한명이라도 진심으로 잘 교화되어 사회에서 그들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되기를 빈다.
영어에 관심이 많은 소년수들이 생각보다 영어를 곧잘해서 감동 받기도 한다. 몇몇은 긴 편지를 손에 쥐어 주기도 한다. 나이와 장래희망을 한국어로 길게 적어서 주면, 그대로 번역해서 주기도 하고, 영어로 답장을 쓴 뒤 수업시간에 건내 주기도 한다.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경고하듯이 말한다. -하고 많은 데 중에, 왜 무섭게 교도소를 가느냐? 위험하지 않냐.
그러나 나는 아직 어린 친구들에게는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물론 그들은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지만, 그들의 성장배경을 모르기에 무조건 악인으로 주홍글씨를 새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로 나간 그들이 다시 한번 기회를 얻고 사회에 잘 적응하여 다시는 같은 곳으로 돌아오지 않는게 결국 공공의 선을 위하는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들은 내가 처음 만난 세계이다. 있는 줄도 몰랐던 세계이다.
오래도록 나의 영어 재능기부가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대가없이, 바라는 것 없이 지속되는 봉사가 단순히 그들을 위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