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잘 부탁드려요….”
아이를 데리고 상담을 한 사람은 아이의 할머니였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알겠지? 할머니 먼저 집에 가 있을 테니까 공부 끝나면 바로 와. 저녁 맛있는 거 해 놓을게.”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에서 다 묻어났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고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낯선 학원이 부담스러울까 나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었다. 아이는 사탕을 꺼내어 마스크 안으로 쏙 집어넣은 후 우리의 첫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며칠 뒤,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어느 햄버거 가게에서 오순도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아이와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햄버거를 먹고 있는 손자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에겐 엄마가 없었지만, 더 없이 따뜻한 할머니가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두 사람을 밝게 비쳐주고 있었다.
학원비 결재일이 되면 어김없이 할머니는 학원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작아지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땅으로 꺼질 듯, 힘없는 모습이 불안하기까지 했다.
“암이라네요…. 말기….”
원장 선생님이 한 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보는데, 아,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아직 아이는 너무나 어린데….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매미 소리가 한창이던 작년 여름이었다. 막 출근을 하고 아이들 책상을 닦고 있었다. 상담실에서 원장 선생님과 아이의 할머니가 이야기 중이었다. 결재일인가 하고 날짜를 따져 보았는데, 아직 결재일은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한참 뒤, 둘은 나왔다. 할머니의 뒷모습은 이제 정말로 힘겨움 그 자체였다. 모기만한 소리로 인사를 하고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인사 오셨어요. 잘 부탁 한다고….”
원장 선생님이 말했다.
여름이 끝나고 있었다.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으나, 그늘은 제법 시원했다. 나는 그렇게 가을을 느끼며, 또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출근을 했다.
“새벽에 돌아가셨다네요….”
원장 선생님이 아이의 할머니 소식을 전했다. 아이가 눈에 밟혀 어찌 가셨을까, 싶은 생각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아이가 왔다. 퉁퉁 부은 눈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같이 수업을 듣던 어린 동생들이 한마디씩 해 주었다.
“형아, 괜찮아?”
“형아, 많이 속상하지….”
“형아, 기운 내….”
아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의젓한 형아처럼….
“괜찮아….”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아이는 옷소매로 눈을 닦았다. 수업하는 내내 닦고 또 닦았다.
가을이 깊어지던 무렵, 나는 할머니의 빈자리를 아이의 가방에서 느낄 수 있었다.
구멍이 커져 더 이상 가방 구실을 하기 힘들 아이의 학원 가방이 눈에 띄었다. 나는 집에 있는 헝겊 에코 가방을 하나 가져다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고맙게도 그 가방에 학원책들을 넣어 다니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런데 책이 많아서였을까, 그 가방마저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또 구멍이 났어요!”
아이가 나에게 가방을 보였다.
“선생님이 꿰매어 줄까?”
“네!”
“바늘과 실을 가져올 수 있니?”
“내일 가져 올게요!”
밝게 자라고 있는 아이가 참 다행스러웠다.
다음 날,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가 나에게 내민 것은, 아주 커다란, 할머니의 손때가 묻어있는, 바늘과 실 보관함인 ‘반짇고리’였다.
“선생님, 이거 가져왔어요. 꿰매어 주세요.”
아, 나는 순간 울컥해버렸다. 할머니가 가족들을 위해 정성스레 사용하셨을 반짇고리가 아닌가….
“그래, 얼른 꿰매어 줄게….”
바늘에 실을 꿰는데, 눈물이 어른거려 바늘귀를 찾느라 한참 애를 먹기는 했지만,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에게 들키지 않으려 나는 애써 헛기침도 하고 뒤를 돌아보기도 하며 바느질을 시작했다.
튼튼하게 꿰매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려, 어느 덧, 중학생들이 들어왔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잔뜩 기대에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공부 하고 있어. 금방 끝낼게.”
마음이 좋은 중학생 형님들은 조용히 책을 펴 공부를 시작했고, 나는 바느질을 했고, 아이는 내 옆에서 가만히 실과 바늘을 바라보았다.
“다 됐다. 자, 여기!”
“우와, 선생님 마법사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이가 행복해하며 돌아갔다. 튼튼해진 가방에 책을 한 가득 넣어서. 할머니의 반짇고리와 함께.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자꾸만 아이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잘 자라렴. 할머니의 마지막 온 힘이 아이를 위했던 것임을 나는 잘 알기에, 정말로 이 아이가 잘 자라길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