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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내가 행복한 이유
  • ['나의 나눔 실천 이야기' 수기 | 202307ㅣ글 윤경은님ㅣ그림 배유진님]
나는 완치가 없다는 4기 암환자다. 의사 선생님은 기약없이 계속되는 항암치료가 완치가 목적이 아니라 수명연장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땐 슬프지도 않고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4기 암환자의 현실은 기약없이 계속되는 항암, 주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검사 결과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울고 웃고 절망하고 기대하는 고달픈 삶의 연속이다. 우리 같은 암환우들에겐 딱히 미래에 대한 계획도 희망도 없다. 그저 운이 좋아 약효 좋은 약으로 낫거나 쭉 유지하기를 바라며 사는게 전부다. 그렇게 나도 다른 암환우들처럼 암이라는 병에 질질 끌려가며 살던 어느 날, 문득 ‘난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이 다 이 세상에 태어난데에는 이유가 있을텐데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난 그저 돈 많이 벌어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사며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서 미친 듯이 스트레스 받으며 일한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많이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했고 날마다 올라가지 못할 현실을 갈망했다.
난 갑자기 얼마남지 않았을 내 삶을 조금이라도 가치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세상에 가치있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나는 태어나서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본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곧바로 각종 자원봉사에 대해 검색하고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사이트에 가입도 했다. 그러나 초등학생처럼 작은 체구에다가 그나마도 항암으로 약해진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봉사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봉사 사이트를 찾았고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를 달라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텔레케어라는 봉사를 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찾는 글을 보게 되었다. 혼자 외롭게 사시는 독거 노인분들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 말벗도 되어드리고 생활하시는데 경제적, 정신적 어려운 점은 없는지 체크하는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 노인분들께 필요한 후원물품 목록도 작성하고 우울증이 심한 노인분들의 집에 복지사님들의 방문의 필요성도 요청한다. 정말이지 기도의 응답처럼 힘쓰는 일이 아닌 나에게 꼭 맞는 봉사활동이었기에 나는 즉시 봉사신청을 하고 마침내 내 생애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케어센터로 봉사를 가던 그 날, 암에 걸린 이후 처음으로 기대감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전화기 앞에 앉아 독거노인들에게 전화를 하기전에 하나님께 내 진심을 다해서 그분들을 위로하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 홀로 외롭게 지내시는 독거노인분들은 생각보다 매우 많았다. 잘 지내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몸도 편치 않고 자식들이 잘 방문도 하지 않아 외롭고 우울한 감정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다. 나는 진심으로 부모님을 대하듯 그분들과 통화를 했다.
다수의 노인분들이 말상대가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동안 노인 몇분과 대화를 하기에도 시간은 늘 모자랐다. 잘 오지 않는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 멋지게 성공한 자식들에 대한 자랑, 자신들의 젊었던 시절, 노인정에서 있었던 일, 지금 아파서 얼마나 힘든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매끼 식사도 하기 힘든 현실 등등 나는 노인분들과 통화하면서 울고 웃으며 너무 소중한 봉사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에 통화를 끊을때 독거노인분들은 항상 전화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또 전화해달라고 하셨다. 매번 봉사를 끝나고 돌아올때면 한편으로는 그분들에게 조그만 위로라도 된거 같아 마음이 뿌듯했고 한편으로는 얼마나 외롭고 힘드실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하기도 했다.
지금은 케어센터에 복지사분들이 텔레케어 업무를 하고 계셔서 나의 봉사는 3개월만에 끝이 났지만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건강했을 땐 항상 나와 나의 가족들만 생각하고 살았다. 그땐 이 세상이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고 하면서 사는 곳이라는 사실조차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남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도 난 몰랐다. 그래서인지 암에 걸려 죽는 날까지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다 간 오드리헵번의 삶을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질병땜에 때때로 많이 아프고 몸도 맘대로 움직이지 않을때도 있지만 나는 이제 우울한 질병속에 내 남은 삶을 낭비하지 않고 보다 가치있는 삶을 찾아 실천하고 사는 기대와 희망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