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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초승달
  • ['나의 나눔 실천 이야기' 수기 | 202307ㅣ글 이송현님ㅣ그림 주송은님]
대학교 필수 봉사로 1365에서 호스피스 연결된 가정방문 자원봉사를 신청하였다. 이맘때 쯤, 다른 학생들도 봉사 신청을 했기 때문에 남은 자리가 없기도 하였고 암 투병을 하셨던 고모를 보낸 지 1년 반이 되었던 터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고모께 못해 준 게 너무 많았고 고모의 고통을 옆에서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어서 고모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라도 꼭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다른 봉사와 달리, 호스피스 가정방문 봉사는 내게는 무척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고 혹시라도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봉사하기 전 첫 교육을 받을 때도 무슨 내용을 설명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을 하고 정신이 없었다. 내가 속한 봉사 팀은 나와 다른 또래 봉사자, 우리를 지도해주는 동행 봉사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의정부 외곽 지역에 위치한 가정집에 도착했다. 그곳엔 40대 여성과 60대 여성이 살고 있었다. 40대 여성 분께서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아서 어머니인 60대 여성 분이 그동안 돌봐왔던 모양이었다.
동행 봉사자께서는 40대 여성 분의 성함과 함께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대부분은 본인이 옆에서 계속 알려줄테니 잘 따라하라고 하셨다. 나는 40대 여성 분을 곁눈질로 살짝 보았다. 그 분의 성함은 ‘최은애’였다. 은애 님은 창백하고 야윈 얼굴과는 다르게 세상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은애 님의 어머님은 잠시 볼 일을 보러 밖에 나가신 후, 집에는 은애 님과 함께 나와 다른 봉사자, 동행 봉사자만이 남았다. 은애 님은 거동이 불편하여 항상 누워 있었다. 계속해서 누워만 있었더니 몸이 뻐근하고 특히 다리가 저리다고 하셨다. 나와 또래 봉사자가 천천히 은애 님의 다리를 주물렀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다리를 주무르면서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이 정도라면 몹시 저리고 아팠을텐데 은애 님은 마사지를 받으면서도 계속 웃음을 잃지 않았다. 먼저 우리에게 나이가 어떻게 되냐, 학교 생활은 잘 하고 있냐, 꽤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이 봉사를 하게 된 것이냐며 말도 걸어주었다. 우리가 건네야 할 말을 오히려 은애 님이 하시는 것 같아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마사지를 하는 사이, 동행 봉사자가 따뜻한 물을 가볍고 큰 욕조에 한 가득 떠 왔다. 그동안몸이 불편해서 씻기가 어려워서 못했다는 은애 님의 말을 신경쓰신 모양이다. 되려 은애 님은 무척 미안해하셨지만 동행 봉사자가 쾌활하게 웃으며 괜찮으니 목욕 재개 한 번 하자며 은애 님을 욕조에 눕혔다. 은애 님은 처음엔 매우 민망해하시기도 하고 송구하다며 얼굴을 들지 못하셨지만 우리의 따뜻한 손길과 재치있는 농담에 나중에는 즐거워하셨다. 나도 누군가를 직접 씻겨본 건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뭉클해졌다. 은애 님이 지금 이 순간이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더욱 정성들여 씻겨드렸다.
목욕이 끝났을 무렵, 어머님께서 돌아오셨다. 동행 봉사자가 어머니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와 또래 봉사자는 은애 님 곁에 함께 있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애 님께서는 어렸을 때의 찍었던 사진첩을 보여주었다. 천진난만한 6세 때 사진부터 좋은 회사까지 다니며 찍은 30대 때 사진까지 세상 행복하고 맑은 기운의 사진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은애 님의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은애 님도 사진에 나와 있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기분 좋은 순간이라 하셨다. 보통 과거는 다 잊고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라하는데 은애 님께 이러한 말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은애 님, 은애 님은 그동안 있었던 일 중에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많이 남으세요?” 나는 은애 님께 질문했다. 은애 님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랑 단 둘이 제주도로 여행갔을 때요. 취업하고 거의 바로 엄마와 제주도 여행 계획을 세웠어요. 흑돼지도 먹고 올레길도 걸으면서 주상절리도 보고 경치 좋은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셔보자며 얘기했는데 실제로 이 모든 계획을 실천했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내가 사랑하는 엄마랑 약속한 일들을 다 해봤다는 것이 뿌듯하더라고요. 엄마도 좋아하셨고요.” 은애 님은 그 때의 일을 생각만 해도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한 가득 띄웠다.
취침 시간이 다가오자, 나와 또래 봉사자는 동행 봉사자와 은애 님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은애 님을 침실에 눕혀주었다. 낮에 처음 봤던 때 보다 은애 님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보였다. 동행 봉사자와 어머님이 잠시 무언가를 가지러 거실로 나가시고 은애 님은 나와 또래 봉사자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아직까지 저희 어머니가 많이 걱정돼요. 저 가고 나면 혼자 남으시는데 슬퍼하시기만 하다가 식사는 제대로 드시지 못할까봐, 잠도 이루지 못할까봐요.” 좀 전까지만 해도 밝았던 은애 님의 얼굴에 근심이 드리웠다. 나와 또래 봉사자는 어머니를 꼭 챙겨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은애 님보다는 못하겠지만 딸처럼 살갑게 해 드리고 항상 찾아뵙겠다고 말이다. 나는 은애 님한테도 물어보았다.
“은애 님은 후회나 미련이 남는 것이 있으세요? 혹시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면 해 드릴게요.” 은애 님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없어요. 처음 소식 들었을 땐 미련이 남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지금은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을 어머니와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자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오늘 송현 씨와 채린 씨 만난 것도 너무 좋았고 고마웠어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덤덤하고 미련이 없어보이는 은애 님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하였다. 나는 속으로 오늘 이러한 자원봉사가 은애 님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소망하면서 은애 님이 남은 시간을 더욱 따뜻하게 보내기를,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도 제발 고통이 덜 하기를 기도했다.
오늘따라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 하나가 유난히 따뜻해보였다. 어쩌면 은애 님의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과 편안한 마음가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저 초승달이 영원히 따뜻하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