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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한 돌봄이 무한 사랑으로
  • 2014년 9월 조준영님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무한 돌봄이 무한 사랑으로'
똑.똑.똑. 6살 아이와 함께 아버님이 복지관에 찾아오셨다. 아버님의 어두운 낯빛과 상반되게 아이는 너무나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2시간 전, 선유중앙교회 황지환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교회 학생부 준성(가명. 중1)이가
한부모가정으로 6살 남동생과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아버지가 내일 오전 수감되게 되어 당장 이 형제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며 도움을 요청해오셨다. 하루 안에 이 형제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시간이 촉박한 만큼 나는 멘붕 기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조직개편으로 무한돌봄 1개월 차였던 나는 무한돌봄에 오면서 사례관리에 대해 아장아장 걷는 갓난 아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어떡하지..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어떡해!!'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 아버님께 전화하여 복지관에 와줄 것을 요청했다. 팀장님과 함께 아버님을 맞이하고 상황에 대해 듣게 되었다.
조선족 아내와 결혼 후 두 형제를 갖게 되었고 4년 전, 아내가 모든 생활비를 들고 나갔다. 그때 당시 막내가 2살이라 버스운전을 하시던 아버님은 일을 그만두고 4년간 양육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4년동안 퇴직금과 빚을 내어 생활비로 사용하였고 생활고로 인해 막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고 집에서 본인이 키우셨던 것이다. 10여일 전 윗층 사람과 말다툼이 일어났다.
평소에도 층간의 소음으로 인해 몇번이나 찾아가 주의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그날은 서로 언성이 높아졌던 것이 문제였다. 윗층 아저씨의 욕설에 화가 난 아버님은 그 분을 밀쳤는데 비탈길에 그분이 잘못 넘어져 사망하게 된 것이다. 피해자 친구들이 아버님이 피해자를 폭행하여 사망하였다고 거짓 진술하여 내일 오전에 구속된다고 하였다. 당장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아직 만 13세. 5세밖에 안되는 아이들만이 생활하기에는 여러 위험요소가 많았다. 피해자 가족들이 아직 윗집에 산다는 점, 피해자 친구들이 같은 동네에 살며 아버님의 집을 안다는 점, 아이들끼리 잘 생활할 수 있을지 아버님의 걱정은 듣는 사회복지사들이 감히 공감하기엔 너무나 큰 걱정이었다. 가장 먼저 연락을 한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아이들의 엄마. 수소문 끝에 알아낸 아내의 번호로 연락을 하였지만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 단 한마디, '양육원으로 보내'
다음은 누나들에게 연락하였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본인들이 돌봐줄 수 없으니 고아원으로 보내라고. 아버지의 마지막 수단은 만13살 준성(가명)이가 5살 난 동생 준현(가명)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다시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이미 준성이와 이야기를 한 상황이었다. 준성이가 절대 고아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여 둘이 낸 최선의 선택. 마음이 먹먹하였다. 그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었다.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기댈 곳 없이 얼마나 많이 속상하고 답답했을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봐 두려웠다. 다음날. 나는 집에서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따르릉. 따르릉 아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판 전까지 아이들 양육문제로 인해 불구속 수사가 진행되게 되어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아버님을 돌려보내고, 어린이집 연합회 회장님에게 준현이를 받아줄 어린이집을 찾아봐달라고 부탁드렸다. 신원아트스쿨 원장님이 혼쾌히 받아주기로 하였다. 다음 날부터 준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도록. 며칠 뒤, 아버님을 대상으로 권역사례회의를 진행하기 전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님이 가지고 있던 토지 전부를 피해자 가족들에게 합의금으로 주고 피해자 가족들과 잘 해결하고 싶다고 하여 합의 진행하는데 있어 고양 파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 정연재 실장님이 도움을 주셨다. 권역사례회의를 통해 드림스타트에서 준현이의 독서지도 서비스를, 선유중학교에서 준성이의 급식비, 수학여행비 등 감면을 해주기로, 문산종합사회 복지관에서 결연후원금 지원 등 이 가정을 위해 많은 기관에서 서비스 제공을 약속하였다. 아버님의 변호를 맡은 법률사무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동안 진행된 내용과 담당 사회복지사의 확인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아버님의 재판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위해 노력한 부분을 어필하기 위해 증거자료로 사용한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이 가정을 위해 열심히 개입하고 과정기록지를 열심히 작성한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감사했다.
검사가 2년의 형을 판사에게 요청하였다고 했다.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는 어려울 것이니 아버님이 수감될 것을 대비하여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며 여기저기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아버님과 준성, 준현이를 무거운 마음으로 만났다. 아버님이 수감생활 하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 넷은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수급자 신청, 통장관리, 서로 연락하기, 아버님께 편지로 상황 전하기 등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얘기하고 지키도록 약속했다.
하루종일 일이 잡히지 않았다. 준성이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준성이가 너무 불안해한다고. 혹시 준성이가 하교 전에 결과가 나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하셨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띵동. 문자가 왔다. 전화로 아버님께 축하를 드리고 그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선은 준성이에게 연락하였고 어린이집 원장님, 범죄피해자센터 정연재 실장님, 파주상담센터 우후남 소장님, 선유중학교 상담선생님, 준성이 담임 선생님... 연락드랴야 할 분들이 너무 많았다. 또한 연락드릴 분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했다. 처음 아버님이 복지관에 찾아와 아무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혼자서 전전긍긍했던 점이 가장 마음 아프고 안타까웠는데 3달이라는 시간동안 아버님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생겼다는 점에서 무한돌봄 담당자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아버님은 재활센터에서 근로를 하시고, 준성이는 다시 밝은 모습을 찾아 안정을 찾았고, 준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며 수학 재능을 발견하는 등 행복한 나나들을 보내고 있다. 나 또한 다른 가정들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도록 열심히 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