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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둡고 암울했던 긴 터널을 지나
  • [장애극복수기 | 201001 | 김현주님] 어둡고 암울했던 긴 터널을 지나
지금 내 삶은 어둡고 암울했던 긴 터널을 지나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휘파람 불며 달려가고 있다. 막 서른이 될 무렵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질병은 모든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낯선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이었다. 발병 당시 상태는 무척 위중했다.
손가락하나도 까딱할 수 없이 사지가 마비되었다.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질병은 자가 면역 질환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인으로 척수 신경세포의 수초가 탈락됨으로 팔 다리가 마비되고 감각도 저하되며 발병 부위와 정도에 따라 대소변 장애와 시각이상이 올 수도 있는 질병이다. 현재 정확한 원인이 밝혀 지지 못함에 따라 치료제도 없는 실정이다. 2001년 1월 31일 저녁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퇴근 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누운 것이 스스로 잠자리를 펴고 누운 마지막 날이 되었다. 발병 후 너무나도 힘들었다. 30년을 건강한 몸으로 마음대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리적인 모든 일들은 물론 제 손으로 밥 한 술 떠먹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 도저히 믿기지도 않았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도 재발은 4~3개월 주기로 찾아왔다. 열심히 재활치료에 전념해서 겨우 기구를 잡고 일어 설만하면 또 다시 재발이 오고 또 다시 재발이 오고..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힘들었다. 계속되는 재발로 인해 병원을 전전해야 했고 발병 후 6년 동안의 나의 삶은 피폐해 지고 우울하고 암담하기만 했다. 이렇게 살아 뭐하나 싶은 생각에 항상 죽음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발병 이후 몸과 마음을 다해 지성으로 돌봐주신 어머니의 새까맣게 탄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을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렇게 의미 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내게 뭔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사무자동화과정을 교육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6개월 과정을 마쳤다. 일하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그 기간에도 어김없이 재발은 있었지만 재발이 오랜만에 찾아온 배움의 즐거움을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 발병 전에도 워드로 문서 작성하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이 교육을 통해 나는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워드부문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1위를 했다. 아무런 소망도 없던 나와 그런 나를 지켜보는 어머니에게는 너무나도 큰 기쁨의 선물이었다. 이후 치료받던 병원을 바꾸고 새로운 약으로 치료를 시작하면서 감사하게도 재발도 줄고 몸 상태도 조금씩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무엇이라도 배우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려는 마음에 대전에 있는 대학에 편입하려고 준비를 하다보니 휠체어를 이용하는 내가 학교를 다니기에는 이동의 문제, 학교 내에서 접근성의 문제와 학비문제 등 많은 제약이 따랐다.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고심에 고심을 한 끝에 결국 인터넷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사이버 대학을 알아보고 전공도 사회복지에서 상담심리로 바꾸어 2009년 3월 편입을 했다. 이동의 문제와 학교접근성 문제가 동시에 해결이 되었다.
합격을 하고나서 보니 열심히 하면 국가에서 등록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학비문제도 해결이 됐다. 이번에 학교 진학을 하면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발병초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위로와 격려를 해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마음은 전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와는 다른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그들의 위로와 격려에 반발심 같은 것도 생기고 그들의 위로와 격려에는 한계를 느꼈었다. 그런 이유로 투병 중에도 병원 내에 사회복지사가 상주하고 있는 것처럼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를 가진 상담사가 상주하면서 질병이든 사고든 이로 인해 장애를 입고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상담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상담사들이 병원에 상주하며 이제 막 장애를 입어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안아주고 격려해 준다면 그들이 장애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시간을 단축하면서 세상으로 나오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내가 그런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싶었다. 30년을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면서 힘겨웠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히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전공도 사회복지에서 상담심리를 선택했고 병원에 상담사로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만져주며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이정표 같은 상담사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라서 어렵기는 하지만 꿈이 있으니 그 꿈을 향해 가는 여정이 즐겁고 행복하다.
열정이 생긴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꿈을 이루는 그날을 생각하며 목표를 향해 달려 갈 것이다. 암울하기만 했던 내 삶이 꿈으로 인해 희망의 싹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음이 행복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