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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을 수 없는 물빛 향기 소록도
  • [자원봉사활동수기 | 201002 | 목수아님] 잊을 수 없는 물빛 향기 소록도
소록도, 가만히 되뇌고 있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금세 푸르름으로 차오르는 그 곳. 5박 6일 동안 소록도의 물빛 향기에 취해있던 나는, 돌아와서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그 은은한 향을 되새기고 있다. 처음 이 소록도에 오기로 결심했던 그 날이 생각난다. 다양한 캠프에 참여해오던 나로서는 캠프에 참가해 ‘함께’ 한다는 자체가 이미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와 함께 어떤 장소에서 하는 지는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세상을 향한 하얀 사슴들의 나들이’라는 5박 6일간의 소록도 봉사활동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다른 캠프에 지원하듯 선뜻 바로 지원할 수 없었다. 한센 병이 전염병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과, 한센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보니 더 겁이 나고 괜한 걱정을 했던 것이다. 게시 글을 세 번째 읽고 나서야 결심이 섰고,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스물두 번째 되는 해에 처음으로 ‘소록도’라는 작은 섬에 발을 딛게 되었다. 전국에서 모인 마흔 두 명의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봉사단 ‘하얀 사슴’, 첫 날 그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어찌나 신기해보였는지 모른다. 저들도 나처럼 한 번쯤 고민을 해 보긴 했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혼자 부끄러워져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다지곤 했다. 꽤나 긴 시간 버스를 탄 탓에 메스꺼움을 안고 정신없이 차에서 짐을 옮기며 숙소로 올라가는 길, 숙소 앞으로 쭉 펼쳐져 반짝반짝 빛나는 수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껏 봐왔던 물색과는 다른, 좀 더 맑고 푸르다 못해 청록 빛을 띠는 그 물빛은 나에게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설렘을 선사했다. 첫 날은 소록도 마을이름을 따 동생리, 중앙리, 남생리, 신생리, 구북리, 새마을로 조를 나누고 서로 어색함을 없애고 친해지기 위해 레크레이션을 했다.
조 이름이 마을이름이라, 처음에는 잘 외워지지도 않고 헷갈렸는데, 이제는 우리 동네 이름처럼 친숙하고 더 정감있게 기억되는 것 같다. 그리고 둘째 날, 봉사활동에 앞서 소록도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각 조별로 포스트게임을 하며 장장 네 시간이 넘도록 소록도 구석구석을 걸어 다녀야 했다. 몇 가지 암호와 조그맣게 그려진 지도만으로 코스를 찾아다니며
땡볕에서 오랜 시간 걷기란 정말 힘들었지만, 덕분에 자혜의원, 수탄장, 검시실, 감금실, 만령당, 순바구길 등 소록도의 역사적인 곳을 눈으로 직접 보고 찾아다니며 더욱 잘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원장 재량에 따라 한센인들이 부당하게 격리, 감금당했던 감금실과 그들의 신체를 해부하여 화장하였던 검시 실을 둘러보며 아직도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묻어나는 것 같아 발을 쉽사리 떼지 못하였다. 한센병 환자들은 한센병 발병 시, 사망 후 시체 해부 시, 장례 후 화장할 때, 이렇게 ‘세 번 죽는다’고 한다. ‘세 번 죽는다’ 는 이 말만으로도 그들의 시린 아픔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 그 이상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애환을 느끼며 한센인에 대한 나의 편견과 무지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하루였다.
셋째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신뢰 쌓기’ 가 이루어졌다. 처음 뵙는데도 ‘아이고~ 우리 손녀 같으이.’ 라고 하시며, 청소라도 할라치면 손사래를 치시며 아무것도 안 시키려 하시고 그냥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하셨다. 그러다보니 청소, 목욕 등 노력봉사보다는 대부분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어 하루하루 어르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어르신이 소록도에서 살아오신 몇 십 년 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어놓으실 때마다, 난 어르신의 손을 꼬옥 잡아드리며 웃어드리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어르신은 우리가 찾아뵙겠다고 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부터 나오셔서 우릴 기다리곤 하셨다. 오후 4시쯤이면 저녁을 드시는 시간인데도, 다른 어르신이 저녁 안 드시냐고 물어보시면 어르신은 “조금 아까 먹었어.” 라고 하시며 우리가 가기 전까지는 식사도 하지 않으셨다. 오후 1시부터 함께 있었기에 어르신이 저녁을 안 드신 것을 아는데도, 우리한테까지 “저녁 먹었어. 그러니까 느이 저녁 먹을 때까지 더 있다 가.” 라고 하시는 어르신께, 차마 저희 가볼 테니 저녁 드시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어르신은 아껴두셨던 캔 커피도 내주시고, 오이도 깎아주셨다. 행여나 당신이 손을 대시면 우리가 먹지 않을까봐, 오이 맨 아래 끝을 잡으시고 껍질을 깐 부분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확인을 시켜주시듯이, 어르신은 오이에 손을 대지 않으셨다고 연신 말씀하시며 우리가 직접 손으로 집어가게끔 하셨다.
나는 “어르신이 주시면 더 맛있을 것 같은데요.” 라고 말씀드렸지만, 어르신은 “나 손 안 댔어. 이렇게 먹으면 깨끗하고 좋아.” 라고 재차 강조하듯 말씀하셨다. 나는 아삭아삭 오이를 깨물어먹으며 시원하고 맛있다며 웃어보였지만, 마음이 몹시 아팠다. 오이의 끝 부분을 잡고 윗부분에는 절대 손대지 않으신 채 껍질만을 벗겨내시는 그 모습이 너무 능숙하셔서, 그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어르신께는 웃어 보이려 무진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다섯 째 날은 소록도의 어르신들께 음식을 만들어 배달해 드리는 날이었다. 김치전, 감자전, 호박전을 부쳤는데, 오전 9시쯤부터 전을 부치기 시작해서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전 부치는 사람들은 기름 냄새, 배달하는 사람들은 땡볕, 정말 모두가 고생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어르신들이 더 맛있게 드시도록 하고픈 마음에 그렇게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 ‘오늘이 마지막’ 이라고 말씀드리러 어르신께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어르신께 받은 것밖에 없는데, 아직 해 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벌써 마지막 날이 되었다는 게 더 아쉬웠고, 곧 오겠다고 하면 정말 매일 기다리실 것 같아 그런 말씀조차 쉽게 드릴 수 없었다. 그저 손을 꼬옥 붙들고 서로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어르신의 눈이 참 맑아보였다. 소록도의 청록색 물빛처럼, 하얀 사슴의 고운 눈망울처럼. 그 순간, 나는 오랫동안 이 눈망울을 잊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눈망울, 그리고 가슴 시리도록 푸른 소록도, 5박 6일 동안 함께였던 가슴 따뜻한 사람들, 이 모두가 늘 내 마음 한켠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나는 소록도에서 담아 온 이 물빛 향기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은은한 이 물빛 향기가 저 멀리 멀리까지 퍼져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마음 깊이 물빛 수채화 한 폭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