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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그릇 더!!
  • [자원봉사활동수기 | 201002 | 이순영님] 한 그릇 더!!
2008년 용인에 위치한 복지관을 다녔을 때의 일이다. 매주 나는 복지관에서의 정해진 팀 업무에 따라 장애아동 보육시설과 양로원을 다녔다. 언어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장애아동들의 순수함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일찍이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할머니에 대한 사랑도 배려도 잘 알지 못했던 나에게 처음 접한 양로원은 낯설기만 했다. 몇 분의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 일본인들과 맞서 싸웠다며 “덤벼”를 외쳐 대시던 할아버지,
의료지원을 나온 우리들에게 파스를 받아 서랍에 고이 모아 두셨던 할머니, 여기도 저기도 온 몸이 아프다고 호랑이 연고를 찾으셨던 할머니.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영원히 기억될 요구르트 할머니, 작년 10월을 끝으로 볼 수 없었던,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웃음 짓고 계실 그 분. “할머님 오늘은 기분 어떠세요?” “하루하루가 똑같지... ”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침대에 몸 저 누워 계셨다. 하루 종일 약간의 빛을 창문을 통해 보실 뿐.
노란 개나리가 피는 봄, 붉은 자두가 열린 여름, 알록달록 단풍의 가을, 지붕 위 소복이 쌓인 눈을 보시지 못한 것이 어느새 2년이 지났다고 하셨다. 얼마나 저 밖 세상이 궁금하실까? 나는 가끔 지천에 널린 개나리, 진달래를 따다 드렸고 그때 마다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요구르트 하나를 꺼내라고 시키신 후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 나에게 건네주시곤 하셨다. 시설지원을 나갔던 양로원에 거주하시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치아가 안 좋으셨고, 대부분 나라에서 수급자로 생활하시다 오신 분들이기에 시설 또한 요즘의 요양시설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식당에서 할아버지의 손톱을 깎고 있는 난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분명 저건 무말랭이와 콩자반이었다. 치아도 안 좋으신데 틀니도 하지 못하고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저런 반찬이 소화가 잘 될 수 있을까? 물론 매일 이런 반찬을 주시는 건 아니겠지만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 자두 몇 개를 들고 날마다 요구르트를 쥐어 주시는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야! 야! 아주 시콤하게 스리... ” “할머니 드릴까요? 물렁물렁하면서 달달해요.” “야! 야! 그거 말고 나 닭죽 줘라.” “예?.... 닭죽이요? 할머니 닭죽 좋아하시는 구나?” 닭죽 이야기를 하시며 입맛을 다시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차를 타고 복지관을 가는 길에 아른 아른 거렸다. 무더운 여름 부드럽고 쫄깃한 닭살과 뭉글뭉글한 찹쌀밥이 얼마나 드시고 싶으실까?
나는 남자친구에게 이야기 했다. “오빠 오늘 요구르트 할머니가 닭죽 찾으시더라. 안쓰러웠어.” “그래? 어르신들 닭죽 좋아하시지. 많이 드시고 싶으셨나 보다.” “응. 내가 죽 집에서 사다 드릴까?” “그럼 나머지 어르신들은 어떻게 하고? 그러지 말고 우리 휴가 때 한번 가서 해드리자.” 조리사로 일하고 있던 남자친구가 좋은 제안을 했고, 나는 그 이튿날 시설에 전화를 걸어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우리의 휴가는 닭 씻기로부터 시작됐다.
우리 둘은 중복에 맞춰 휴가를 냈고 일산에 살고 있는 남자친구는 갖은 재료와 준비해 놓은 음식을 싣고 100Km를 달려와 주었다. 생각보다 남자친구는 많은 음식을 준비해 왔다. 오징어 초무침, 시금치, 편육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과 매실음료수까지 준비해왔다. 우리는 큰 솥에 깨끗이 씻은 닭을 넣어 삶아 낸 후 살을 발라내고 불린 찹쌀과 나머지 재료를 넣어 어르신들이
드시기 좋게 만들었다. 스물두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순서를 교대해 가시며 식당과 부엌을 오가셨다. “오늘 뭐 맛난 거 해?” “닭죽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점심시간 오빠와 난 식탁에 밑반찬과 과일, 수저를 올려놓고 닭죽이 완성되기 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몽글몽글 당근과 표고버섯을 넣은 닭죽이 완성됐다. 오빠는 닭죽을 푸기 바빴고 난 나르기에 바빴다.
그리고 닭죽 한 그릇은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그건 왜 남겨?” “요구르트 할머니는 누워서 드셔야 해서 충분히 식혀서 드려야해.” “한 그릇 더 식힐까?” “아냐. 이 정도 드시면 많으실 것 같은데... ” 너무나 맛있게 그리고 아무런 무리 없이 술술 드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본 남자친구는 더 신이 나서 부족한 밑반찬을 올려 드리고 한 분 한 분 눈을 마주치며 “맛있게 드셨어요? 시원하게 음료수도 한 잔 드세요.” 아! 이렇게 따뜻할 수가 그리고 이렇게 행복할 수가. 나는 적당히 식은 닭죽을 들고 요구르트 할머니 방으로 향했다. “할머니 닭죽 드시고 싶다고 하셨죠? 닭죽 만들어 왔어요.” “야! 야! 니 오는 날 아닌데 우얀 일로 왔노?” “할머니 닭죽 해드리려고 왔죠.”
그날 할머니는 누우신 채 닭죽을 드시며 “맛있다. 입에서 살살 녹네. 좋다. 좋아”를 거듭 말씀하셨다. 한 그릇을 다 드시고 “할머니 맛있으셨어요?” 묻는 나에게 “한 그릇 더”
“더 드신다고요? 많이 드셨어요.” “더 먹을 수 있다. 한 그릇 더” 남자친구는 재빨리 닭죽을 선풍기 바람에 쐬어 식혔고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되시기에 반 그릇 정도 드셨을 때 그릇을 내려놓으며 다 드셨다고 말씀드렸다. “야! 야! 거 남겨 놔라. 내일도 먹게” “예. 주방 아주머니께 할머니꺼 따로 남겨 놓으라고 말씀드릴게요.” “꼭 말하고 가그레이~ 꼭” “네!” 2주 뒤 조금은 쌀쌀해진 늦여름 양로원에 도착한 난 제일먼저 요구르트 할머니를 찾았다. “김OO 할머니 어디 계세요?” “세상 뜨셨다.” “언제요? 왜요?” “지난주에 계속 끼니도 거르시고 시름시름 앓으셔서 병원에 모셔갔는데 거서 돌아가셨어” “.......네....” 우리가 사는 인생은 한 순간이다. 한 순간 어릴 적을 거쳐 청소년이 되고 어느새 성인이 되어 우리의 부모님처럼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아 키우고
노후를 맞이하며 그렇게 저물어 간다. 한 순간은 매우 짧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온갖 기억과 추억들로 뒤 엉켜 있어 그 순간들을 풀면 길고 긴 여정이 된다. 작년 나와 함께 닭죽처럼 보글보글 끓는 사랑을 나누었던 그는 내 삶의 여정에 함께하는 사람이 되었고, 요즘 우린 몽글몽글한 닭죽을 어디가서 끓이면 좋을까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