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갖지 않는 것도 또 너무 큰 꿈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불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작은 힘이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된다면 그 삶은 하루하루 보람과 행복의 꽃길을 걷는 것이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난 계절로 수놓은 도로를 달리며 기분 좋은 만남에 가슴이 설렌다. 8년간의 고등학교 국어 교사직을 정리하고, 그동안의 교육현장에서 갈고 닦은 한국어에 관한 지식과 실전에서 쌓은 가르침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제 또 다른 삶의 보람을 찾아 남은 생을 보내겠다고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꿈을 키워 온 나의 고향, 이곳 김천에서 적지 않은 경쟁을 뚫고 난 그들을 위한 선생님이 되었다. 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참 좋아한다. 우리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크게 작게 그 사람의 가슴속에 크고 작은 돌덩이가 되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평생 그 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또 새로운 길을 개척함으로써 거기에서 느끼는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은 또 다른 삶의 기쁨과 활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얼굴색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언어가 통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그들의 삶에 한줄기 빛이 되겠다는 나의 작지만 당찬 포부는 외국인 이민자들의 열정과 관심에 조금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많은 분들이 외국인 결혼이민자들이 제대로 정착하여 진정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게 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준비해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것을 많이 준비하고 가르친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여유조차 없이 넓고 긴 고속도로만 질주하던 분주한 내 삶의 길에서 유턴하여 꽃길 가득한 아직까지 많은 이가 지나가지 않아 더 소박하고 아름다운 오솔길에 접어든 지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가르침의 삶이었다.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그들의 낯설고 힘든 인생길에 작은 나침반이 되려고 노력하는 삶이었다.
지난 화요일, 강의실에 들어서는데 제자들이 미리 와서 칠판에 “선생님 사랑해요.” 라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 놓았다. 커다란 꽃다발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지금껏 내가 받은 그 어떤 꽃다발보다 더 아름다웠으며 가슴 벅찬 행복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우리는 작지만 서로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며 살아간다. 내가 이들을 가르치기 전 많은 외국인에게 느꼈던 편견과 낯설음은 한갓 기우에 불과했다. 이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며 우리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이 곳 다문화지원센터에 공부하러 나오기 전 한국에 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입 한번 못 열고 답답한 맘에 한국을 떠날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베트남에서 온 예쁜 새댁도 이제는 제법 농담까지 주고받으며 얼굴이 환해짐을 느꼈을 때, 외국인 결혼 이민자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며, 한국어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가족에게 배운 주먹구구식의 한국어 교육이 아니라 제대로 교육받은 검증된 선생님을 통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르게 앉는 자세와 연필 바로잡는 법, 그리고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의 제자원리를 깨우치고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곳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에서 내가 맡은 과정인 한국어 초급과정에는 한국에 온 지 이제 겨우 일 년에서 이년정도 된 새댁들이 대부분이다. 이제 겨우 발걸음을 떼는 어린 아이처럼 나의 제자들은 정말로 열심이다.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 여러 국가에서 온 이들과 함께 하루에 두시간씩 일주일에 두 번의 만남을 가진다. 수업이 있는 날이 공휴일이어서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되면 보충을 해달라고 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공부한다. 결혼 한 지 일이년 밖에 되지 않아 아직 아이가 많이 어려 수업 도중 아이 울음소리에 나갔다 들어왔다 하기도 하고,
또 젖을 물리며 받아쓰기를 하기도 하지만 배움에 목말라 있는 그들의 눈동자는 별빛보다 더 반짝인다. 몇 번 그들의 생일잔치에 초대받기도 하고, 전통음식을 손수 해 와서 쉬는 시간이면 내 눈과 입과 마음을 기쁘게 해 주기도 한다. 그들을 통해 난 더 많은 것들을 배운다. 낯선 땅에서 그들을 위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소개하고 가르치면서 나를 있게 해 준 나의 조국을 더 사랑하게 되고,
나의 조국을 선택해 준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는 선생님’으로 부르며 즐겁고 행복한 행사에는 잊지 않고 나를 꼭 초대한다. 국경과 문화와 관습을 초월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사랑과 정을 나누며, 행복한 만남을 가진다.
심지어 가족과도 잘 되지 않는 의사소통이 나와는 자연스레 되는 것을 볼 땐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국경의 장벽을 허물기도 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한다. 제자들 중에는 필리핀 분들이 많다. 때로 어려운 어휘가 나와 설명하기 힘들 때는 영어로 그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는데, 이들 덕분에 외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조만간 유창하게 그들의 언어로 대화함으로써 선생님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가르치고 싶다. 외국인과 결혼을 기피하는 한 가지 이유 중 2세 걱정이 많이 화두가 된다.
하지만 외국인과 사이에 난 2세들은 국제화시대에 발맞추어 충분히 경쟁력 있는 인재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나라와 어머니 나라의 언어와 풍습을 고루 접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 국제화되고 다원화된 시대에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가 되리라 확신한다. 물론 2세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엄마의 노력은 몇 갑절 더 중요 할 것이다.
한국어 수업을 하다보면 한국인인 나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그들을 통해 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한국에 시집 와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되길 원한다. 꿈과 목표를 가진 자는 그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나의 꿈’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 그들의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에 관해 듣고 그들이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낮은 자세로 기꺼이 그들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필리핀에서 온 얼굴만큼 예쁜 한국 이름을 가진 김빛나는 한국어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영어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다. 받아쓰기는 무조건 100점을 맞으며 교사의 꿈을 키워나간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주바이다는 남편과 함께 고향에 돌아가 요리사인 엄마와 함께 큰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요리의 장점만을 따온 퓨전요리를 개발할 꿈을 가지고 있다. 주바이다가 직접 만들어 온 케이크는 지금까지 내가 맛 본 어떤 케이크보다 달콤하고 맛있었다.
중국에서 온 노옥란씨는 한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중국어 선생님이 되는 꿈을 꾼다고 하며, 필리핀에서 온 네 아이의 엄마 디오스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경험을 살려 얼른 아이를 키워 놓고 훌륭한 교수님이 되고 싶다고 한다. 얼마 전, 예쁜 공주님을 순산하고 한국어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삼칠일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안고 공부 하러 왔다.
한국어 공부에 대한 디오스의 열정에 그들을 위한 스승으로서의 어깨가 더 무거워 진다. 훌륭한 교수님을 키워내는 한국어 선생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이를 두고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했던가? 세상의 모든 스승이 가장 바라고 행복해 하는 말이 아닐까한다.
고향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낯선 땅 한국에서 그들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사랑을 심어 주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들에게 때로 부모도 되고 형제자매도 되어 진정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과의 대화는 늘 나를 맑게 정화시킨다.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의 향기는 가을 날 낙엽 태우는 냄새보다 더 구수한 삶의 향기로 내게 다가온다.
불혹(不惑)을 넘어 선 적지 않은 나이에도 어린 아이보다 더 순수함을 많이 간직한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너무나도 감사하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제 2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정말 행복이란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꺼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지금은 지구가 모두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지구촌시대이다.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말과 행동과 풍습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따뜻한 가슴을 가진 한 가족이다.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볼 때 우리는 아주 작은 지구라는 행성의 한 가족일 뿐이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가진 것 이상 더 많은 것들을 끊임없이 베풀어 주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고 각자 가진 크고 작은 꿈들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감으로써 한국이라는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발 딛고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가을날 화려한 단풍보다도, 밝게 빛나는 햇살보다 그리고 온갖 꽃들보다 더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진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작지만 소중한 내 꿈을 조심스레 펼쳐가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삶을 살아가는 아줌마가 아닐까? 난 하루하루 이들을 통해 나의 꿈을 실현한다. 비록 다른 피부, 다른 문화를 가졌지만 그들과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가깝고 다정한 스승과 제자이다.
나의 작은 지식이 이들의 삶에 기꺼이 한 알 밀알이 된다면 기꺼이 나를 내어 주리라. 낯선 땅, 한국에서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는 그들의 말 한마디가 이 가을 갖가지 색으로 물든 단풍처럼 기쁨으로 나를 물들게 한다.
눈앞에 펼쳐진 한국의 여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도 아름답다. 이 여름, 나의 제자들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 속 동그마니 자리한 우리의 한국어 교실을 벗어나 다음 수업에는 숲길을 걸을까 한다. 신록보다 더 푸르른 아름답고 벅찬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 함박웃음을 지을 사랑스런 나의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