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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장실을 혼자 이용하는 아이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003 | 박민희님] 화장실을 혼자 이용하는 아이
새해를 맞이하면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지요. 저도 고심 끝에 성인이 되어서도 중증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회복지시설조차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첫 만남이 있던 날,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했지요. 기대했던 마음은 곧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되었어요. 한명, 한명 모두 도움 없이는 프로그램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중증장애인이었고,
자원봉사자들도 힘이 들었는지 “선생님, 힘드시겠어요...” 더 이상 오기를 꺼려했어요. 항상 프로그램이 끝난 후 학부모들과 얘기를 할 때면 “선생님, 우리 아이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이 아이가 매일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 말과 함께 저에게 미안해하며 귀가를 하곤 했어요. 저는 하루하루 지나면서 몸도 힘들고 제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뒤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밤잠을 설치며 힘들어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이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괜히 시작한건 아닐까? 다른 복지관에서도 하지 않았던 건 이유가 있어서겠지. 그만 두고 싶다.......”
어느 날, 학부모 중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선생님, 저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선생님이라면 제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는 의아해하며 “어머니, 무슨 일이신가요? 말씀해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러자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선생님, 제 아이는 아직 화장실을 혼자 가지 못해요. 어렸을 때부터 중증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항상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인지 누군가 데리고 가지 않으면 화장실을
가지 못한답니다. 저는 제 아이가 화장실을 혼자서 가게 되는 것이 소원이에요. 너무 어려운 부탁이지요? 20살이 될 때까지 고쳐지지 못했다면 어렵겠지요? 죄송해요. 너무 어려운 부탁을 드려서...” 어머니의 눈은 간절하면서도 미안해하는 마음을 담고 있었어요. 뭐가 그리도 미안하신지. 아마도 이 사회가 어머니를 이렇게 만드셨겠지요. 어머니는 이 아이를 키우는 20년 동안 한 번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겠지요.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누군가 이 아이를 학대하지는 않을까?, 학교에서 밥은 잘 먹었을까?, 화장실은 잘 다녀왔을까? 등등 수없는 걱정거리로 살아오셨겠지요. 어머니는 아이가 학교 다닐 때도 누군가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바지에 볼일을 보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항상 여분의 옷을 가방에 챙겨 다닌다고 합니다. 저는 어머니의 눈을 보며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꼭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그 날부터 아이의 ‘혼자 화장실 이용하기’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와의 대화는 그림판으로 했습니다.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땐 볼일 보는 그림을 보여주기로 하였고,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며 앞장서서 가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옷 혼자서 입고 벗기, 휴지 이용하기, 변기 사용법, 화장실 이용한 후 손 씻기, 다시 프로그램실로 돌아오기 등 화장실을
이용하는데도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프로그램을 하던 중 아이가 그림판을 만지작거리는 거예요. 저는 혹시 하는 생각을 가지며 “화장실 가고 싶니?” 라고 물어보자 아이는 그림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저를 보고 웃었어요. “혼자서 화장실 다녀올래?” 라고 말하였더니 아이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거였어요. 그 때부터 가슴이 왜 이리 두근두근 떨리는지. 저는 아이를 몰래 뒤따라갔지요. 아이는 혼자서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옷을 벗고 변기에 앉았어요. 저는 마음속으로 ‘이제 휴지를 뜯어야지, 이제 일어나서 옷을 입고 물을 내리는 거야. 잘했어! 이제 손만 씻으면 돼!’ 라고 간절하게 말했지요.
아이는 제 이야기를 들었던 걸까요? 한동안 변기에 앉아서 휴지를 손으로 잡고 저를 기다리더니 제가 오지 않자 일어나서 옷을 입고 물을 내리고 화장실에서 저를 찾더군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아이에게 “고마워!, 정말 고마워!”라고 얘기하며 꽉 안아주었습니다. 아이는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 날 이후로 어머니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셨어요. 자원봉사자에게도 “손잡지 말고 뒤에서 지켜봐주세요. 혼자서 갈 수 있거든요” 라고 먼저 얘기하셨고, 슈퍼에서도 “네가 먹고 싶은 거 골라서 사가지고 와봐” 라고 직접 교육도 시키시는 모습을 보이셨어요. 그리고 다음날 저에게 “선생님, 어제는 우리 아이가 혼자서 과자를 샀어요.”라고 하며 매일매일 달라지는 아이의 모습에 기뻐하면서 얘기를 하곤 했지요.
그동안 아이의 손을 잡고 하나하나 해주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부터 인가 좀 더 여유로워진 태도로 아이를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오늘도 하루를 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