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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중국산
  • [다문화수기 | 201004 | 양계보님] 나는 중국산
“여보, 이것 봐. 어때요?” “괜찮다. 잠깐! 중국산이잖아.” “왜? 중국산은 안 좋아?” “중국산은 다 싫다!” “야! 네 남편도 중국산이야!” 저는 양계보입니다. 한국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항상 이것 때문에 싸워요. 우리 아내가 중국산 무조건 다 싫어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항상 ‘네 남편도 중국산이야.’ 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곤 우리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습니다.
제가 연수생으로 한국에 처음 왔었을 때 안경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서문 중국인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를 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하는 활동에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그렇게 교회 활동에 열심이던 어느 날, 성경 공부 때문에 중국 사람과 한국 사람이 같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때 아내를 만났습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내는 말도 없고 너무 조용한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격이 밝아서 아주 시끄러운 사람입니다. 특별히 아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건강한 긴 머리였습니다. 아내의 긴 머리 때문에 자꾸만 시선이 아내에게로 갔습니다. 사실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 첫 수업에서 담임선생님이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 저는 결혼 하고 싶은 여자 스타일을 얘기했습니다. 바로 ‘키가 조금 크고, 머리 긴 여자’입니다. 그렇게 대답하자 학생들이 모두 다 웃었어요. 아내를 만났을 때 ‘내가 찾던 여자’라는 느낌을 받아서 꼭 그녀를 잡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질문을 했고 나는 한국말을 조금 밖에 몰라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일부러 그녀를 만날 계획을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혼자 학교 PC실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용기를 내어 직접 그녀 앞에 가서 물어 봤습니다.
“너 남자 친구 있냐? 없냐?” 그녀가 너무 놀라서 아무 소리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를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나는 자주 그녀를 찾아 갔습니다. 며칠 후에 방학을 해서 우리 자주 전화로 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말을 잘 몰라서 통화할 때 서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고민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통화 대신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알아 갔습니다.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서 아내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고 한국말도 이렇게 배웠습니다. 우리 그렇게 사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한번 만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너무 기뻤습니다. 내가 한국말 잘 못해서 그녀가 어머니와 만날 때 할 말을 다 써주었습니다. 그때 써준 메모가 아직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그때 너무 긴장해서 제가 뭐라고 했는지 하나도 기억을 못 합니다.
그런데 딱 하나 평생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이 땀을 너무나 많이 흘렸습니다. 장모님께서는 제게 내가 괜찮지만 외국 사람이라서 허락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하니까 꼭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녀는 놀랍게도 가출을 했습니다. 가족과 연락을 다 끊었습니다. 휴대폰 번호도 바꿨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내 휴대폰으로 그녀의 동생한테 한 번 전화한 적이 있었는데 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에게 계속 전화했지만 아내가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실 제가 정말 무서워서 전화를 받고 싶었습니다. 저는 무척 고민이 되었습니다. 안받으면 처갓집에서 경찰에 신고할 것 같았기 때문에 아내 몰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장인어른이 아내를 집으로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장인어른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이 일 때문에 교회에도 못 갔습니다. 목사님을 만나는 것도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목사님밖에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목사님께 장인어른을 한 번 만나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장모님을 만났을 때 제가 걱정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만약 장인어른께서 화를 내시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 장인어른께서는 참 좋은 분입니다. 교회의 장로님입니다. 그런데 장인어른이 별말씀 없이 제 얼굴을 한 번 보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둘이 앞으로 잘 살고 신앙생활 열심히 잘 해라.”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던 큰 돌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솔직히 그때 장모님 만났을 때 보다 땀을 더 많이 흘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땀이 납니다. 그 후에 저는 자주 그녀 집에 가서 장모님이 해 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우리 장모님께서는 요리를 정말 잘하십니다.
몇 개월이 지나 중국에 계신 부모님께 인사를 갔습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중국에서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그 후 2년동안 중국에서 아주 힘들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언어가 달라 서로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문화 차이 때문에 우리는 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사를 하려고 새 집을 찾다가 의견이 달라 크게 싸웠습니다. 너무 화가나서 아내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너 한국에 돌아가라.
그때 아내가 아무 말도 없이 바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을 내뱉자마자 저는 바로 후회했습니다. 저도 이 말을 들을 때 어떤 기분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도 외국에서 살아 봤고 아내는 나 때문에 가출까지 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나를 따라 자기 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에 왔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생활을 하는 아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습니다. 아내는 화도 내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과를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는 바로 아내를 안고 사과하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눈물에 콧물까지. 중국에는 ‘남자는 쉽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그런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자는 강해야 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 자존심을 다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눈물범벅이 되어 진심으로 사과를 해서 아내 또한 울었습니다. 아내가 울면서 나에게 한 말 때문에 우리는 그 후로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오빠, 사랑해.”
중국에서 남자가 여자한테, 특히 아내한테 사과하면 아내가 무섭기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결혼 후에 성경 말씀대로 부부가 하나가 됩니다. 부모님을 떠나서 같이 삽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면 됩니다. 아내는 평생 같이 살 사람입니다. 그를 누구도 대신 못 합니다.
그래서 평생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동행하기를 ‘원해야’ 하며, 동행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즉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동행하려면 그들이 어떤 점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우리가 화낼 때 모두 다 상대방이 잘 살기를 원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믿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소망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주영이를 잘 키우는 것입니다. 양국의 문화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가 우리에게 좋은 점도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주영이 앞으로 중국말, 한국말 다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집에 양국의 맛이 다 있습니다. 아내가 중국산을 싫어하지만 우리는 중국산 제품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편까지 중국산이기 때문에 중국산이 없으면 우리 아내는 못 살 겁니다.
“여보, 빨리 된장찌개 만들어 줘.” 아내에게 맛있는 된장찌개 끓여 달라고 보채면 아내는 저에게 웃으면서 말합니다. “그럼 여보, 물만두 만들어 줘.” 힘들 때도 있지만 우리 가족은 서로를 믿기 때문에 사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야! 아들 중국말로 해.” “아들 하지 마. 한국말로 해.” 아내와 저는 이러면서 삽니다. 부럽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