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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한 사회복지사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004 | 이지혜님] 행복한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어릴 적 꿈이 사회복지사였어요?” “어?! 어... 사...회...복지사.” “와~ 그럼 선생님은 꿈을 이루신거네요!” 난 4년차 사회복지사이다. 내 이름 앞에 붙는 사회복지사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질 무렵, 바쁜 일상에 지쳐 난 잠시 내 꿈과 행복의 의미를 지나쳐온 듯 하다. 한 아이의 뜬금없는 질문은 업무를 잠시 멈추고 어린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게 하였다. 현재 내가 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처럼 나 역시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하는 아이였다. 어려운 형편에 투병생활중인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구 생계를 책임지느라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어머니, 어린 남동생은 하고 싶은 것 많은 한 아이를 일찍 철들게 할 뿐이었다.
난 그저 빨리 어른이 되어 돈을 벌어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꿈만 절실했었다. 행복의 기준은 단지 돈일뿐이었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꿈꾸는 것은 사치라 여겼다.
5학년이 되던 어느 날, 영구임대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가족의 새 보금자리가 생겼다. 낯설었지만 설레임 가득했던 그날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재도 임대아파트 대상으로 선정되어 이사를 가게 되는 대상자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설레임 가득한 눈빛에서 어린시절 나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외풍이 없어 더 이상 춥지 않고 원할 때 목욕을 할 수 있고 더 이상 주위 눈치를 보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화장실은 신대륙마냥 신기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지 내에 위치한 복지관을 통해 나도 방과 후 학원에 가는 친구들처럼 영어를 공부하러 복지관으로 향하는 일과가 생겼다. 그곳에서 처음만난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공부를 하던 그 시간이 내겐 얼마나 기다려지고 행복했었는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처음으로 칭찬을 들으며 학습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이 생겼고 만남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내 인생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며 난 원하던 대학의 사회복지과에 진학을 하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비난 아닌 비난과 걱정 속에서도 나눔의 가치를 품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지해 주셨던 부모님은 언제나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 딸의 대학 입학식을 간절히 기다리셨던 아버지는 입학식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가족과의 긴 이별을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마주한 죽음 앞에 두려움과 슬픔에 빠진 채 제대로 대학생활을 할 수 없었고 돈을 벌겠다며 바로 휴학을 했다. 다신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사회복지사의 꿈을 다시 꾸게 된 건 아버지의 핸드폰이었다. 핸드폰 속에는 나의 대학 합격과 입학에 대한 문자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고 긴 투병 생활 속에서도 손길이 필요한 곳에 자원봉사를 멈추지 않았던 아버지는 어느 누구보다 사회복지사로 성장할 나의 모습을 기다리고 꿈꾸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학을 결심한 이후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자원봉사도 꾸준히 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회복지사로 한걸음 다가설 무렵 내가 영어를 공부했던 복지관에서 직장체험연수를 하고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잘 하고 싶은 일이 바로 나와 같이 어려운 가정에서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로 느낄 아이들을
만나고 나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많은 아이들에게 가난이 꿈과 희망마저 쓰러뜨리는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그래서 지금의 이곳에서 사회복지사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대상자들과 가장 밀접한 곳에서 근무하며 100여 가구 200여명의 아이들을 만나 온지 3년이 지나 4년차로 접어들었다. 지난 시간들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하고 코끝이 알싸해지고 눈가가 젖어들기도 한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아이와 품에 안고 함께 했던 그 시간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오고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서 13번째 생일 파티를 하고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는 여전히 그립다. 함께 카네이션을 만들어 지역의 병원을 돌며 어르신의 가슴에 달아드리고, 수화공연을 준비하여 마을축제의 무대에 섰던 일은 잊을 수 없는 선물이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음은 더없이 신비하고 소중한 일이다. 사회복지사로 지내온 지난 3년여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보석 같은 귀한 시간이었는지 돌아보면 볼수록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이러한 감사함과 행복함을 돈의 가치와 견줄 수 있을까? 돈이 가져다 줄 수 없는 넘치는 기쁨을 전해주는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공기의 소중함처럼 그냥 지나쳐 온 듯 하다. 지난해 어머니의 암 수술 이후 지금까지도 만날 때마다 어머니의 안부챙겨주시고 함께 해 줄 수 있는 건 기도뿐이라 미안해하다고 전하는 대상자들은
나의 새로운 가족이자 든든한 후원자이다.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기준이 더 이상 돈이 아니라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임을 잊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더 열심히 즐기는 것이다. 꿈을 위해 배우고 싶은 것이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꿈 대신 포기를 먼저 배우지 않도록 더 열심히 뛸 것이고 돈으로 채울 수 없는 나눔의 가치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두 손도 마주 잡아 함께 할 것이다.
사회복지사로 살아가는 것이 큰 기쁨이고 행복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어 난 오늘도 지칠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