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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세 새댁의 힘든 결혼살이
  • [다문화수기 | 201005 | 백기환님] 23세 새댁의 힘든 결혼살이
전 나이가 23세인 아이가 3명인 새댁이 아닌 새댁입니다. 한국에 와보니 23세는 꿈 많은 대학생이 대부분이더군요. 내 고국 필리핀에서도 조금은 빠를 수 있는 나이이지요. 남과 별반 다르지 않게 졸업 후에는 직장을 다니고 부모님을 도와드리는 것을 생각했는데 그 꿈은 제가 일찍 결혼하면서 깨졌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아직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자리를 잡지 않고 있었고, 아니 결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 할 것입니다. 나이도 어리고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세상 물정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모든 것은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남자, 아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너는 알아?” 아빠가 물어 보셨습니다. “아니,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대답을 했지만, 사실은,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느끼고 왜 그런 대답을 했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말에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이 있던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의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랐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고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2007년 2월 24일 한국 인천공항에 내린 저는 너무 추웠습니다. “한국 좋아?” 남편의 묻는 말에 저는 “네 , 좋아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언어뿐만 아니라 음식도 전혀 맞지를 않았고, 한국 생활도 모르고 제일 힘들었던 것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고, 특히 엄마가 너무도 보고 싶었습니다. “결혼은 쉽지 않은 일이야, 특히 너의 남편은 애들이 2명이나 있다며, 애들을 키우는 것은 너의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 하지만 네가 깊이 생각하고 결정 한 일이라고 엄마는 생각해, 이 길을 선택했으니까 후회하지 않게 잘 살아, 어떤 부부에게도 문제는 생길거야, 많이 힘들어지면, 언제라도 전화해.
일찍 일어나 식구들깨우고 식사챙기고 씻기고 입혀서 학교와 유치원에 데려다주고나면 한국어 공부방으로 1주일에 2번씩 갔습니다. 유일하게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날이었습니다. 곧 시간이 늘어나 3군데다니면서 1주일에 많은 시간을 한국말과 요리를 배웠습니다. 학교다니기 전에는 외로운 시간을 혼자 지내야했으나, 학교에는 필리핀 친구와 선생님이 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게 공부하고 이야기하다보면 주부라는 사실을 잊고 필리핀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 갈 때는 배운 한국말을 써먹을 생각에 빨리 걷기도 했습니다. 말이 자유로이 통하지는 않았으나 아이들과 관계는 좋았습니다. 필리핀의 제 동생들을 생각하면서 잘 대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이 안들어오는 날은 우리 셋이서 서로가 껴안고 자는 날이 많았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임신이 되었고, 아이를 좋아하는 저는 뛸 듯이 기뻐했으나, 그것이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임신하면서 몸이 힘들어 점차 아이들에게 신경을 전보다는 써주지를 못 하게 되고, 하연이를 낳고는 더더욱 힘들어 지면서, 자꾸 아이들을 시키는 일이 많아지고 같이 자는 일이 없어지면서 아이들은 저와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 그래도 잠자는 시간이나, tv보는 시간 등으로 남편과는 자주 다투게 되고, 큰 소리가 나는 일이 자꾸만 생기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우리 부부 모르게 진짜 엄마를 만난 일이 생겼습니다.
평소에는 밖에 나갔다오면 밖의 일을 이야기 하던 아이들이 이상해서 조용히 작은 아이에게 물어보니 엄마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무어라 말을 못하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었지만, 내게 말도 안하고 전 부인의 부탁을 들어 주신 시어머니가 미웠습니다. 그 날 우리 부부는 많이 싸웠습니다. 남편은 제가 전처럼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다고 말을 했고, 전 억울했습니다. 저를 전혀 도와주지 않는 남편과 막 걸어 다니면서 집안을 더럽히는 막내 하연이와 말을 안 듣는 두 아이로 인해 전 너무도 지쳐 있었으니까요. 식구들이 잠든 밤 혼자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진짜로 내 아이인 하연이만 좋아하는 것 일까? 우리 집이 어려워져서 그렇게 된 것일까? 아이들이 친엄마를 만나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국에 온 이후 3년 동안 두 아이를 키웠습니다. 제가 아무리 잘해주어도 ‘친엄마는 친엄마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때문에 친엄마와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큰 딸은 저보고 필리핀으로 가라고도 했습니다. 전 울면서 큰아이에게 남편과 너희를 사랑하지만 지금 엄마는 너무나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고, 우리들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친 엄마와 살 수 없는 사정을 이야기를 했고, 아이들은 이해를 한 것 같았습니다. 아동양육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엄마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을 다 아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식구들은 조금은 서먹서먹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아이들이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좋습니다. 전처럼 옷을 입혀주지 못하고 같이 못 자는 것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좋습니다. 옛날보다 말이 적어진 큰딸에게 곧 사춘기가 오겠지요. 사랑하고 있다고 더 말해 주어야겠습니다. 컴퓨터 게임에 빠진 둘째 아이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알기 위해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으나 이번일이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제가 좀 더 노력을 한다면 아이들도 제가 사랑한다는 것을 알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힘들 때 전화하라고 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냥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전화를 해서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태풍으로 집이 무너진 엄마에게 걱정을 하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향에 아직 가보지 못 했습니다. 엄마를 만나는 꿈을 자주 꿉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고 엄마 얼굴만 보다가 일어납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겼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제가 나이가 더 많았다면 더 좋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