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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결핍을 사랑한다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006 | 서수정님] 너의 결핍을 사랑한다
아침부터 칼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던 2007년 12월 중순, 마산시 외곽의 한적한 농촌마을 언덕배기 외딴집에는 바람도 돌아나가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온몸에 퍼지는 냉기에 절로 오그라드는 손발, 덜덜 떨리는 이를 악다물고 방문을 여니 여기저기 구토물의 잔해가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위엔 재호가 그랬는지 치우다 만 휴지가 구토 물과 뒤엉켜 서늘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전기코드도 꽂지 않은 전기장판위엔 앙상하게 뼈만 남은 할머니가 웅크린 채 잠이 들어있었고
방안 여기 저기 소주병도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 듯 널브러져 있었다. “어딜 갔을까?...” 그때부터 재호를 찾으며 보낸 그해 12월 연말은 15년 사회복지사의 내 인생에 가장 절박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아버지의 사망과 어머니의 가출로 어릴 때부터 증조할머니에게 맡겨진 재호. 이제는 고령에다 거동이 불편하고 치매증상까지 있는 팔순 할머니의 보호자가 된 열다섯 중학생이지만 재호는 할머니보다 더 제도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었다. 할머니에겐 가정봉사원이 파견되어 일상생활을 돕고 있었지만, 복지사의 개인적인 관심과 지원 외에는 도벽이 있는 사춘기 청소년 재호의 앞날을 책임 있게 담보해줄 어떠한 사회적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게 우리 사회복지의 현실이었다.
술로 세월을 보내는 할머니의 술주정과 집안 곳곳에 배긴 오물냄새는 어느새 재호에게 일상이 되어버렸고, 두 사람의 보호자로 생계비통장을 가지고 있는 재호의 또 다른 할머니는 마산시내에서 포장마차를 하였으나 예전에 장사하다 진 빚으로 여전히 생계에 쪼들리고 있었다. 일부러 마산 할머니를 찾아가지 않고서는 용돈 한 푼 받을 수 없는 재호는 중학생이 되면서 도벽이 생기기 시작했고, 학교를 빠지는 날이 늘어가면서 문제아로 낙인찍혀버렸다. 재호와 같은 나이의 아이를 키우던 나는 재호를 대할 때마다 사회복지사로서의 객관적 입장보다는 엄마의 마음이 되어 이것저것 챙기고 보듬어주고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우리아이에게 용돈주듯 방문할 때마다 재호에게 줬던 용돈은 결핍이 많았던 재호에게 동정 이상의 것이 아니었고 염려의 말 한마디는 간섭이 되어 아이를 눈치보게 만들었으며 지역사회자원 연결로 후원받았던 갖가지 후원품과 후원금은 재호의 일탈을 부추기는 도구로 전락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사회복지사라는 아줌마! 정기적으로 용돈주고 가정봉사원 보내서 집 청소하고 할머니 보살펴주고, 가끔씩 사람들 데려와서 쌀과 생필품도 주고 재수 좋으면 통장에 돈도 제법 들어오게 만들어주는.. 재호에게 나는 고마운 아줌마이긴 했지만 내가 준 사랑은 그 애가 정말 필요로 했던 사랑과 보살핌은 아니었던 것이다.
재호의 일탈행동이 늘어나면서 나는 재호와 할머니에게 지원되는 모든 것을 다 중단했다. 그리고 스스로 깊은 침묵에 들어갔다. ‘나는 재호를 우리아이처럼 만들려고 하진 않았나.. 엄마 말 잘 듣고, 용돈주면 필요한데만 쓰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아이...’ 그러나 재호의 결핍은 내가 엄마흉내를 내어 쓰다듬어 주기엔 너무 큰 아픔이고 상처였다.
나는 사회복지사 본연의 업무로 돌아와 마산할머니를 설득시켜 재호의 증조할머니를 요양원에 입소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증조할머니는 ‘내 집’에 대한 애착과 재호와 떨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시설입소를 거부했지만 24시간 돌볼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할머니의 폭음과 술주정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살아온 손자의 어려움을 더 살펴야 한다는 간곡한 부탁에 눈물을 훔치며 시설입소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재호는 마산할머니가 데려갈 수 있도록 했다. 아직 노동력이 있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 마산 할머니는 자신의 시어머니를 재호와 같이 살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 즉 기초생활보장수급비를 받아서 생계에 보태야하는 것을 포기하고 재호에게 부족했던 사랑과 보살핌을 줄 사람은 ‘할머니 당신’ 밖에 없음을 거듭 강조하는 나의 의견을 수용했다. 물론 두 사람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드리겠다는 약속을 드림과 함께..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했던 건 성장환경으로 인한
재호의 정서불안과 도벽의 치료였다. 아동상담기관을 수소문해 보니 마침 차상위?저소득층아동을 위한 상담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기관이 있어 재호가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의뢰했다. 상담실 가는 날이면 나는 재호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첫날 상담을 마치고, 재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었는지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내가 재호와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자 재호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던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데려가고, 데려오고 하는 수고를 즐겁게 감수해야만 했다. 사실 나는 노인복지분야의 사회복지사라 해당어르신인 재호의 증조할머니에 대한 서비스가 종결되면서 재호에 대한 시간을 따로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재호는 나의 사회복지사 인생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준, 나는 무슨 일을, 누구를 위하여 하는 사람인가를 다시 한 번 각성시켜준 존재였기에 그 아이의 뒤에 오랫동안 서있고 싶었다. 재호는 상담실 갈 때마다 잡았던 부담스러웠던 나의 손을 어느 샌가 꼭 쥐고 있었고, 20회기 상담을 3-4번 남겨둔 어느 날, 업무 중에 헐레벌떡 달려간 내게 말했다. “선생님, 바쁘시면 이제 같이 안가도 돼요. 제가 찾아갈 수 있어요”
재호는 지금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있다. 재호의 뒤에 서있고 싶어 한 나의 바램은 가끔 그 아이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한통으로 확실히 내가 그 아이의 뒤에 서있음을 실감케 해준다.
“선생님, 컴퓨터학원 다니고 싶은데 학원비 지원 받을 수 있나요?” “선생님, 할머니가 무릎수술 하셔야 되는데 간병인을 무료로 부를 수 있나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 밖에 없다’라는 괴테의 말처럼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하물며 15년을 넘게 사랑에 목말랐던 사춘기소년의 결핍을 채운다는 건 밑 빠진 독에 물붓기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을 붓는 속도, 독에 차는 물이 다 흘러내리기 전에 끊임없이 붓는다면... 그래, 빛의 속도로 붓다보면 언젠가는 그 독도 물이 차게 되지 않을까... 재호의 항아리에도 어느새 밑바닥에 고인 물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