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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는 남편에게
  • [다문화수기 | 201011 | 응웬응옥비치님] 사랑하는 남편에게
이 편지의 내용들을 당신이 읽고 제 마음을 알고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한국에서 산 지 벌써 3년 5개월이 되었어요. 3년 5개월이 적지도 않고 긴 세월도 아니지만 3년 5개월 동안 살면서 느낀 점을 쓰려고 해요. 베트남에서 본 드라마속의 한국 남자들은 너무 친절하고 아내한테도 너무 잘해주고, 한국여성들은 바쁘게 집안일을 하고 아기도 키우면서 직장도 다니는 멋진 생활을 했어요.
한국의 부부들처럼 서로서로 존중해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제 꿈이었지만 진짜로 한국남자와 결혼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어느 날 국제결혼업체에서 우리 집에 찾아와서 “요즘 베트남 여성들은 한국으로 시집을 많이 가요. 잘 살고 있고 남편도 잘해주고 친정집에 얼마나 많이 도움을 주는지 몰라요. 비치도 한국으로 시집을 가면 좋을 거예요. 엄마 몸도 좋지 않고 공부 잘 하는 두 남동생을 도와주어야지 않겠어요. 베트남 남자와 결혼을 하면 경제적으로 많이 못 도와줘요. 한국으로 시집을 가면 남편이 친정으로 학비를 도와주니까 동생들이 대학교에 다닐 수 있잖아. 한국으로 결혼을 하게 생각해 보세요” 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맏딸로서 본분을 지키게 부모와 동생을 좀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람과의 결혼에 대해 부모님과 같이 이야기 했지만 부모님의 허락을 못 받았어요. 제 부모님은 자식 3명중에 딸 한 명 밖에 없는데 먼 곳으로 시집보내고 싶어 하지 않으셨어요. 베트남에서 먹고 살면 좀 힘들지만 무슨 일이 생기나 아플 때나 서로서로 찾아갈 수 있고 타국에 시집을 보내면 아무것도 모르고 언어, 문화, 습관이 달라서 걱정이 된다고 얼마나 반대했는지 몰라요.
제가 고집이 너무 세서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 생각대로 국제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당신과 함께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상상하고 있던 한국과는 전혀 다른 현실 앞에서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어요.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좀 배우고 왔지만 한국 사람과 같이 이야기 할 수 없었어요. 우리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결혼했기 때문에 처음에 우리는 서로서로 의심을 많이 했지요. 당신은 큰 차 운전 일을 하니까 매일 새벽 4시나 5시에 나가서 밤에 늦게 집으로 돌아오고 가끔 당신은 집에 안 들어올 때도 있었어요. 당신의 휴대폰 광고 메시지들은 ‘오빠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요. 나랑 같이 여행가요. 오빠 연락해주, 나 오빠 보고 싶어’ 이런 문자가 많이 와있었어요. 그것을 본 저는 당신이 바람을 피우는 줄 알았어요. 당신이 설명해줘도 저는 믿지 않았어요. 밤 12시에도 대구에 있는 국제정보회사 통역한테 전화도 하고 의심을 계속했는데 알고 보니 광고 메시지였어요.
베트남에서는 휴대폰으로 광고를 안 하니까 몰랐던 거예요. 제 의심과 오해들을 풀기 위해서 큰 차 운전 일을 하러 가면 저도 데리고 갔어요. 마산, 진주, 광주, 대구, 부산, 강원도 등 당신과 같이 여행하러는 못가지만 같이 일을 하러가니까 여행가는 것처럼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처음에 우리 서로 너무 힘들었지만 그때가 추억에 많이 남아있어요. 처음에 시집와서 농사일을 많이 하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베트남에서는 농사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멀리 있는 논과 밭에 시아버지와 같이 가면 경운기를 타고 가니까 집에 돌아오면 많이 힘들지 않은데 시아버지가 다른 일을 하시면 시어머니와 함께 먼 논과 밭에 걸어가면 30분이 걸려요.
일을 하다가 집에 다시 걸어가면 힘도 없어지고 다리도 아프고 쉬지도 못하고 부엌으로 가서 점심밥을 준비하고 다 먹고 나면 다시 밭으로 걸어가서 일을 하고... 아! 너무 힘들어 정말 피곤했어요. 또 한국습관과 베트남습관이 그렇게 다를 줄 몰랐어요. 베트남에서는 매일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빨래를 하는데 한국에 오니까 시골사람들이 매일 목욕하지 않고 옷도 갈아 입지 않았어요. 저는 매일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하니까 당신과 어머님은 제가 매일 목욕하고 빨래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집에서 목욕하지 말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라고 하니까 제가 너무 놀랐어요. 그리고 우리 집에 세탁기가 있지만 어머니는 전기세가 아까워서 한 번도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세탁기를 못 써서 그냥 동네 도랑에 가서 사계절 내내 빨래를 했어요. 추운 겨울에 빨래를 하니까 도랑물이 너무 차가워서 손이 얼마나 시렸는지 몰라요.
도랑 옆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큰 양동이에 뜨거운 물을 갖다 주고 “손이 시려우면 뜨거운 물에 손을 녹히면서 해. 다음번엔 세탁기를 좀 돌려서 빨래해야지 이 추운날씨에 손빨래하면 어떡하냐?”며 걱정해주셨어요. 하지만 베트남에 계시는 친정 부모님께 힘들어도 열심히 잘 살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우리 미래를 생각하면 시부모님을 친정 부모님처럼 생각하면서 시부모님의 힘든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한평생 농사일을 하시면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배우며 농촌에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여보, 그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행복했어요. 우리 서로 웃음으로 살았는데 요즘 부모님은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당신이 농사일을 많이 하게 되었잖아요. 당신이 집에서 부모님을 도와주면서 같이 일하니까 제 마음이 너무 좋지만 지금 당신은 당신이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짜증도 많이 내고 부모님과 같이 일 하면서 부모님한테 좋은 모습 보이지 않고 집에 돌아와서 웃는 모습이 없네요. 우리 식구들은 다 힘이 없어 보이고 밥을 먹어도 맛이 없어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 제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무섭고 저는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몰라요. 도대체 요즘 당신 왜 그래요? 우리 예쁜 딸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예쁜 딸이 있으면 우리 더 재미있게 더 열심히 살 줄 알았지만 아니였네요. 저도 당신도 농사일을 한 적이 없어서 지금 농사일을 하기 시작하니까 부모님은 걱정을 많이 하시고 계세요. 당신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부모님한테 잘 해드리면 우리 집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저는 무뚝뚝한 여자이기 때문에 당신과 부모님한테 잘 해드리지 못했지만 앞으로 더 잘해드리고 싶고 열심히 살면서 애교와 애정표현도 많이 할게요. 애교와 애정표현이 제 진심이라는 걸 알아주고 저의 부족한 점을 받아주고 안 좋은 점은 고쳐주세요.
우리는 농사일이 힘들어도 예쁜 딸을 보고 참고 더 열심히 농사를 짓고 웃음으로 잘 살면 좋지 않을까요? 부모님한테 우리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줍시다. 예쁜 딸한테 좋은 엄마, 좋은 아빠 모습을 보여주며 열심히 살아봅시다. 앞으로 저는 부모님 잘 모시고 당신한테도 잘해주고 모두 다 잘할게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 힘내세요. 하하하, 호호호. 많이 웃으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 비치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