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들어오기 전에 변변한 봉사 한번 못해본 저는 첫 대학교 시절에 꼭 기억에 남는 봉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대학교 내에 있는 봉사활동 동아리 중 하나인 야학교였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찾은 그곳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또는 호기심, 반항심으로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던 청소년, 늦은 나이에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선 아주머니, 수십 번의 실패에도 항상 웃으며 도전하시던 할머니,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시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에 나오시는 아저씨, 군인이지만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 찾아온 군인 아저씨까지 저에게는 모든 사람이 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남을 가르친다는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그들에게 ‘국어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사람, 저에게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항상 교탁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혼자 앉아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있는 학생, 혜연씨였습니다.
중국에서 왔다는 그 학생은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몸이 불편한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학교에 나오는 날보다 나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고 나오는 날은 어김없이 지각이었습니다. 항상 마음은 쓰였지만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웬일인지 혜연씨가 평소보다 일찍 교실에 앉아있었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 혜연씨, 오랜만에 학교에서 보네요?” 그러자 혜연씨는 조용히 얼굴을 붉히며 “네, 죄송해요. 집이 너무 멀어서..”라며 말문을 흐렸습니다. 알고 보니 혜연씨는 야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외지에 살면서 무료로 수업을 듣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귀한 학생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에도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나 자신은 항상 검정고시라는 시험의 합격을 위해서만 노력했을 뿐이지 한 번도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단 몇 분 시간을 내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닌데 시험의 결과에서 오는 자기만족이나 교사라는 위치 때문에 오만한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그 후 부터는 나부터 변화된 모습으로 학생들을 대하고자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항상 수업 시간 이전에 학생들과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런 저의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준 혜연씨에게 더 큰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가장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국어 수업 시간에라도 혜연씨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되어 다른 학생들보다 어눌한 발음 때문인지 말수가 별로 없는 혜연씨 이기에 국어시간 만큼이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말 할 수 있도록 어렵지 않은 짧은 문장을 읽도록 부탁했습니다. 저의 이러한 갑작스런 부탁에 수줍어하면서도 또박또박 읽으려 애쓰는 모습이 참으로 예뻐 보였습니다.
또한 수업시간에 내주는 숙제도 제때 제출을 하지 못하더라도 꼭 제출하려고 노력했고 항상 늦기만 하던 수업시간에도 어느 날은 혜연씨가 먼저 학교에 도착해 저에게 인사를 건네는 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4월 검정고시가 다가왔습니다. 모두 함께 노력한 결과를 빛낸 다는 마음에 설렜습니다. 특히 이번 검정고시를 붙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준 혜연씨의 합격 소식이 더욱 기다려졌습니다.
그런데 검정고시 당일 혜연씨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혜연씨가 졸업한 학교가 중국이었던 지라 준비했던 서류가 부족해서 서류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속상해하는 혜연씨를 보며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픈 마음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혜연씨와 함께 준비했던 첫 번째 검정고시가 지나고 두 번째 검정고시인 8월이 다가왔습니다. “혜연씨, 잘 할 수 있죠?”라는 물음에 “당연하죠. 저 이번에 진짜 시험 잘 볼거에요.”라며 활짝 웃으며 시험장에 들어가던 혜연씨 덕분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며칠이 지나 합격자 발표가 나고 혜연씨에게 합격의 소식을 물었습니다. “혜연씨, 이번 시험 결과 어때요?” 라는 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혜연씨는 “죄송해요. 이번에는 합격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합격해서 제 꿈을 이루고 싶어요.”라고 수줍어하면서도 또박또박 대답하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 했습니다.
함께하는 과정 속에 저에게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혜연씨. 덕분에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함께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 진정으로 남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을 배울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위해 도전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꿈이 있기에 지금도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혜연씨가 꼭 검정고시에서 좋은 성적거두길 기도하며 ‘혜연씨의 꿈’ 꼭 이룰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