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공무원시험 필기에 합격해서, 수험생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필기 합격생들과 면접 스터디를 할 때였습니다. 요즘은 봉사활동을 중요시하는 면접관도 많으니 자원봉사활동을 하자는 이야기를 누군가 꺼내자, 다들 찬성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면접이 한 달 남짓 않았는데 봉사활동을 하러 가자는 게 불만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하기로 했습니다. 스터디 조원 중에서 봉사활동 쪽에 밝은 형이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단체 봉사활동을 신청했고,
저희가 배정받은 곳은 독거노인 지원센터였습니다. 한 달간, 일주일에 두 번 봉사활동하기로 한 첫날, 센터 간사님과 할아버지 혼자 사시는 집을 방문해서 다른 팀원들은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저는 그 사이에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에 다녀오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와 목욕을 가게 된 할아버지는 지하철에서 신문지를 모으고, 시장에서
박스를 모아서 생활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모은 신문지 더미를 들고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셨다고 합니다.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고, 여름내 집에만 계셔서 정말 목욕이 필요한 분이었습니다.
더운 여름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해 냄새가 많이 나서인지 탈의실에서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피했습니다. 괜히 내가 부끄럽고, 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했는지 후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얼른 옷을 벗고 할아버지가 옷을 벗는 것을 도와드렸습니다.
비누로 먼저 샤워를 시켜 드리고 난 뒤에, 탕에서 때를 불렸습니다. 얼른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대충 할아버지의 때를 밀고 저도 씻으려는데 할아버지가 “학생 등 밀어줄게”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아니야 내가 고마워서 그래” 하시면서 때수건을 손에 끼고는 제 등을 밀어주셨습니다.
앙상한 손에 힘주어 제 등을 밀어주시면서 “고마워, 학생. 이렇게 오랜만에 목욕하니까 정말 시원하고 좋아.”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냥 할아버지가 부끄러워서 때도 대충 밀어 드리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정말 저에게 고마워하고 계셨습니다. 그냥 나올 수가 없어서 아까 할아버지 등을 다 밀어 드리지 못했다고 하면서 다시 한 번 정성스럽게 할아버지 등을 밀어 드리고, 팔과 다리 등 곳곳을 깨끗이 때를 밀고 씻겨 드렸습니다.
목욕을 다 하고 지원단체에서 준 새 속옷을 입혀 드리고, 깨끗이 빨래한 셔츠와 바지를 입혀 드린 뒤에 빨랫감을 비닐봉지에 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 감춰둔 1,000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바나나 우유 하나를 사시더니 제게 내미셨습니다. “학생 마셔. 목욕하고는 이게 제일이야.” 제가 거절할 새도 없이 빨대를 꽂아서 제 입에 물려주셨습니다. 인자한 웃음을 짓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 버린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공무원이 되겠다고 하는 녀석이 이렇게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야... 제 자신을 나무라면서 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바나나 우유를 사서 할아버지가 하셨듯이 빨대를 꽂아 할아버지께 드렸습니다.
그 뒤로 한 달간 할아버지 댁에 일주일에 두 번씩 방문해서 빨래도 해드리고 청소도 해드리고 말동무도 해 드렸습니다. 지원센터에서 독거노인분들에게 핸드폰 지원사업도 했는데 할아버지께 전해 드리고 사용법도 가르쳐 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 문자를 가르쳐 드렸을 때 제일 먼저 저에게 ‘고맙다’라는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면접을 보는 날 아침엔 ‘잘해라’라고 문자도 보내주셨고, 최종 발표날 불합격한 사실을 알려 드리자 그날 밤에 ‘힘내라’라고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겨울날, 할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여름에 다쳤던 허리가 더 심해져서 이제는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가족이 없으신 할아버지는 시설에 들어가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요양원에 들어가시는 날에는 도서관에 가기 전에 할아버지 댁에 들렀습니다. 할아버지는 내년에는 꼭 붙을 거라면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셨지요.
우연히 시작한 봉사활동, 그로 인해서 만나게 된 할아버지를 통해서 노인복지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보건복지부 무원이 되어서 노인복지 쪽 전문가가 되어서 노인분들의 생활을 돕고 싶어졌습니다.
보건복지부 쪽은 많은 사람이 원하는 부서라서 점수가 좋은 사람들이 가게 된다고 해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지금도 공부하면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도 할아버지는 가끔 문자로 ‘힘내라’라고 보내주십니다. 노량진에서 공부하느라 할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는 자주 찾아뵙지 못하지만, 올가을엔 좋은 소식을 들고 첫 월급으로 할아버지 겨울 내복을 사 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