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날인가 싶더니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들 형탁이가 고등학교를 지원해야 할 때쯤 아들은 실업계를 가고 싶다고 하고 엄마 생각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우리 모자는 진지하게 한다.
아들, 그래도 우리 한 번 해보자. 그리고 실업계를 가든 인문계를 가든 대학은 갈 수 있으니까 아들이 네의 인생을 어떻게 살까 그리면서 선택하렴. 엄마는 우리 아들이 선택한 것은 그대로 따라 주련다.
아들은 몇 일을 고민하더니 인문계 세일고를 지원했고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아빠가 안 계신 지금의 우리 생활은 아들을 맏이라는 책임감으로 누른다.
고등학교를 가도 돈이 많이 들 거예요 하며 항상 걱정이다. 그에 대한 고민의 결정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자활 센터에 들어 가기로 한 것이다. 모자 가정으로써 자활에 근무하는 조건부 수급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래야만 등록금에 대한 짐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주거복지에 들어가 근무하면서 정말 창피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비참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루 하루를 회의감에 사로 잡혀 살던 열등감은 많은 교육을 통해 자신감으로 주어진 현실을 당당하게 살기로 한 밑거름이 되었다.
2년정도를 주거복지에서 일하면서 도배 기능사 자격증과 온수 온돌 자격증도 땄다. 지금은 건물 관리로 사업단을 옮겼다. 그 이유인 즉, 사회적 일자리보다 시장형으로 가서 5년 후에는 자립 적립금도 탈 수 있는 것을 택한 것이다. 우리 아들은 한국 산업 기술대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을 마치고 휴학 후 군복무 중이다.
아들이 대학을 입학할 쯤에
팔불출 같지만 우리 아들은 어떤 길을 선택했든 잘 했을 것이다. 엄마가 항상 믿으니까.
고등학교 1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엄마를 학교로 오란다. 나는 급한 일인 줄 알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음료수를 사들고 찾아간다. 면담을 청한 이유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들을 너무 반듯하고 예의바르고 착하게 잘 키운 엄마가 궁금했단다. 후에 선생님은 아들편에 화장품과 편지를 써서보낸다. 민망하면서도 고맙고 그 넓은 뜻에 감동한다.
아들 “너에게도 기회가 되면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품어 주렴.” 한다. 아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형탁아,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단다. 아들이 군대에 가서 있는 동안 엄마는 늘 아쉬워 하던 공부를 다시하려고 한다. 96년도에 다녔던 방통대를 아직도 포기 못하고 욕심을 내본다. 또 하나의 이유는 둘째인 딸 혜정이가 실업계를 가느니 인문계를 가느니 실갱이를 한 결과 부평 여고를 선택했다. 딸이 인문계를 선택한 이유는 아들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들이나 딸에게도 학원 한 번 보내주지 못하고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게 한 것은 미안스럽다. 지금은 1학년이지만 고3이 되면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딸에게 “공부해라”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말이 아니라 엄마가 열심히 하면 저도 열심히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2010학번 방통대 중문과에 등록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14년 동안을 포기 못했던 꿈을 실천하는 것이 기쁠 뿐이다.
혜정이는 불평 아닌 불평을 한다. “엄마가 열심히 하니까 나도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잖아” 하며 투덜 거린다. “몰랐구나” 엄마가 바란 것이 그것이란다. 엄마는 공부해서 좋고 딸은 그 영향을 받아서 좋다. 우리 아들 ,나, 딸혜정이는 한자 1급 자격증을 누가 먼저 따나 서로 시합중이다.
누가 먼저 자격증을 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표와 꿈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자활센터에서 많은 교육을 받았고 “의사소통과 자아실현”교육을 받으면서
나도 하고 싶은 꿈을 이루기로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 할 뿐이다. 공자의 가르침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절망스러워하지 말고 더 많이 배우고 배워야 한다. 그러면 좋은 날이 있지 않을까 한다.
자, 이제는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희망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