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화를 처음 접한 것은 교원연수에서였다. 2006년 겨울 청각장애인의 언어인 수화를 배우기위해 겨울방학 2주간의 연수를 신청했고, 2주의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나름 수화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수화를 배우면서 강사분이 했던 말 중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든 사람이 수화를 배우면 더 이상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이 아니다.' 그렇다. 우리 모두가 수화를 배우면 청각장애인은 모든 사람들과 수화를 통해 대화를 할 수 있고, 자신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
사실 그때 수화를 배울 땐 청각장애인을 만나면 혹시나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배웠다. 하지만 교직 생활을 하는 내가 청각장애인을 만날 기회는 좀처럼 없었고, 내가 배운 수화들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잊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수화를 하나도 모르게 될까 염려하여 어떻게 하면 일상 생활 속에서 매번 수화를 조금씩이라도 쓸 것인가 고민하다 매년 제자들에게 간단한 수화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매년 학교 현장에서 수화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면서 나도 수화를 잘 몰라 수화사이트를 통해 수화를 함께 배우면서 가르친다.
수화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다 보면 처음엔 수화를 왜 배우냐고 투덜거리던 어린 제자들이 수화를 조금 배우면서 진지해 지고 정말 청각장애인이 불편하다 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다질 때면 참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수화라는 것이 마법 같은 힘이 있어 학생들이 수화를 배우다 보면 첨엔 장애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함양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 그 마음이 남을 이해하는 마음으로까지 커지게 된다. 즉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맘으로까지 전이가 된다.
그래서 난 매년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에게 수화를 가르치고 그 배운 수화를 통해 학예회에서는 수화를 통해 한 해를 마무리 하곤 한다.
그런 나에게 수화가 시련을 주기도 했다. 나의 학급에 어려서 교통사고로 한 팔을 잃은 상기가 있었다. 상기는 한 팔이 없어 한 팔로 수화를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나도 수화를 잘 하는 것은 아니고 교원 연수를 통해 수화 노래 몇 곡 정도와 간단한 지화정도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수준에서 상기만을 위해 한 손 수화를 터득해 수화를 가르쳐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학급 모든 친구들이 함께하는 학예회에서 상기만 수화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매일 학예회 수화 준비를 해야했고, 우리 반은 다른 모든 반에서 올해도 수화를 한다는 것을 아는데 상기를 어떻게 할까 나의 근심은 커져만 갔다. 우선 나 혼자 집에서 한손만으로 수화를 해 보았는데, 뜻도 통하지 않는 것 같고 참 어색해 보였다.
나 스스로도 한손 수화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자 한 팔의 장애를 가진 상기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수화를 통해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만 더 인식하게 될까 참 많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시련은 우리에게 또 다른 도전의 기회가 되었다.
한 친구가 상기가 수화노래 지휘를 하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했고 난 우리반 수화 지휘를 상기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사실 지휘라는 것도 양 손이 다 있는 사람도 하기 힘든 것인데, 한 팔이 없는 상기가 하기엔 참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학기 초 국어 시간에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시간에 상기가 자신의 꿈이 합창지휘자라고 한 것도 기억이 나서 그 꿈을 미리 이루어 보인다는 생각으로 수화 노래 지휘를 상기에게 맡기기로 결심하고 상기에게 맡겼다.
상기는 매일 방과 후 노래를 틀어 놓고 한 손으로 정말 열심히 합창 지휘를 연습했고, 결국 학예회 날 여러 학부모님들을 모신 자리에서 멋지게 수화 지휘를 하였다. 상기의 지휘를 보면서 우리반 친구들이 수화하는 그 모습은 바로 감동 그 자체였다. 상기의 지휘에 맞추어 34명이 하는 수화는 어떤 영화의 한 장면보다 나에겐 감동스러웠다. 지금 돌이켜 보면 상기만 수화를 하지 않았으면 어쩌면 수화라는 것이 상기에게 더 큰 아픔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우리반 친구들은 수화 지휘의 기회를 상기에게 줌으로써 이 모든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우리 모두에게 큰 감동을 준 것 같다.
수화 지휘를 통해 자신감을 가진 상기는 학년말 학급 재능 발표회에서는 자신도 수화 지휘가 아닌 수화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자기 혼자서 한 손 수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학예회에서는 상기가 수화 지휘를 했지만 매일 자투리 시간에 수화를 배울 땐 상기도 한 손으로지만 수화를 배웠다.
사실 내가 한 손으로 수화를 하려 할 땐 다른 손이 있다는 생각에 한 손 수화를 터득할 수 없었지만 상기는 자신의 한 손으로 다른 사람이 보기에 어색하지 않은 수화를 스스로 만들어 갔다. 한 손으로 수화를 연습하는 상기를 보면서 인생에서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세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 우리반 모든 친구들은 하나가 되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과 ‘나 항상 그대를’ 수화 공연을 학년 재능 발표회에서 멋지게 하였다. 수화라는 것이 장애를 가진 학생에게 장애인도 할 수 있고, 장애인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수화! 첨에 수화를 접하면서 수화란 청각장애인의 언어이기 때문에 청각 장애인과 관련된 직장을 가질 것이거나, 청각 장애인과 대화를 원하는 사람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나는 역발상을 통해 수화라는 것이 일반 학생들도 배우면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수화를 체험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놀라웠다. 수화를 배우는 학생들은 수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청각장애인이 얼마나 불편할까를 수화 체험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그런가운데 청각 장애인뿐만 아니라 시각 장애인, 지체 장애인 등 여러 다른 장애인들도 생활 속에서 불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함양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수화를 통해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하자 그 마음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
즉 가까운 학교 생활에서 옆의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으로까지 전이가 되었다. 수화 체험을 통해 우리 반이 배려심이 많은 학급이 되는 것을 보고 수화 체험의 놀라운 기적을 만날 수 있었다.
수화! 수화라는 것은 시각 장애인의 언어인 동시에, 우리와 시각 장애인 나아가 장애인 더 나아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한다.
모든 학생들이 수화를 체험하면 그 속에서 수화의 기능뿐만 아니라 말로서는 배울 수 없는 큰 무엇인가를 스스로 배울 수 있기에 꼭 수화를 체험해 보라고. 어떤 동기에서든 수화를 체험해 본다면 그 속에서 새로운 인생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나는 수화 연수를 통해 수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나의 제자들은 나를 통해 수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수화를 배운 많은 제자들이 자신의 가족 및 지인들에게 수화를 체험하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수화를 체험해 보고 그 속에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펜을 들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학생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것은 나에게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고 보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