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푼 꿈을 안 고 교대를 졸업한 그해,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발령받은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일종의 기대감과 소명의식을 잔뜩 가지고 교단에 섰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바라보던 선생님들은 크고도 존엄해 보였거든요. 나 자신은 그렇지 못했지만 내 추억속의 선생님처럼 그런 교사가 되리라고 다짐하고 평소에 입지도 않은 정장을 사고, 구두를 신고, 목소리를 차분히 하며 그렇게 매일매일 수업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겨울은 춥고 눈도 많았지요.
추위나 눈이 봄까지 이어졌었습니다. 하필 그 때 저희 집 보일러가 고장이 났습니다. 3월 새학기 깨끗하고 예쁘게 차려입고 출근을 한창 하고 있는 와중에 말이죠. 아이들에게 단정한 용모와 깨끗한 생활 습관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가르치는 교사가 보일러를 핑계로 씻지도 않고 출근할 수 없기에 주말에 그 당시 유행이던 찜질방을 찾았습니다.
저희 동네에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멀리서도 찾아오는 그런 큰 찜질방이 있었죠. 평소 절대 대중목욕탕에는 가지 않던 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절대 엄마에게도 속살을 보이지 않던 저였습니다. 그러기에 혼자 몰래 주말 가족이 없는 틈을 타 찜질방에 갔죠.
처음 가본 찜질방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대중목욕탕과는 다르더라고요. 먹을 것도 많이 팔고, 식당과 수영장, 수면실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곳저곳을 구경을 한 후 열심히 씻고 있는데, “등 밀어드릴까요? 혼자 오셔서 등 미시려면 힘드시겠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뒤를 돌아보자, 우리 반의 소위 여자 “짱”이라는 아이가 다른 반 무리까지 이끌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1학년 때부터 “문제아”라는 훈장을 달고 선생님들 속을 무난히도 썩이며 우리 반에 당당히 입성한 그 아이 유진이! 하필 그 아이가 미소를 띠며 제 앞에 있었습니다.
발령을 받고, 6학년 담임을 주시면서 교감선생님이 소위 “블랙리스트”로 꼭 짚어 주신 그 아이였습니다.
저는 새내기고 어리기 때문에 더욱 더 아이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권위 있어 보이기 위해 3월 한 달 내내 노력을 했습니다. 특히 그 아이 앞에서는 더 그랬지요. 우리 반의 권력을 그 아이가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지난 해 선생님께서는 “김 선생, 유진이 잘 다뤄야 할 거야. 절대 휘둘리면 안 돼. 조금이라도 얕잡아 보이면 아이들이 선생님 말보다는
유진이 말을 더 듣는다니까.” 라고 겁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아이라니……. 당황한 저는 얼굴이 빨게 져서 급하게 “응”이라고 대답을 해 버렸습니다. 유진이는 다른 반 친구들에게는 “밖에서 만나자.”라고 이야기 한 후 등을 밀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 왜 혼자 오셨어요? 보통 목욕탕은 가족이랑 오잖아요.”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러는 넌 왜 가족이랑 안 오고, 친구들이랑 왔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유진이는 시무룩해지면서 “저희 식구는 다 바빠요. 동생이 아프거든요”하면서 말을 끊었습니다. 그때 제가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학기 초에 유진 엄마랑 상담을 할 때 유진이 동생이 청각장애가 있어서 엄마는 동생 뒷바라지 하느라 유진이에게 관심을 못 갖는다고 저에게 부탁을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미안한 마음에 “그럼 내가 식혜도 사주고, 네 등도 밀어줄게.”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유진이는 표정이 밝아지면서 “그럼 자주 그렇게 해주시는 거죠?”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얼떨결에 “응”이라고 대답을 해 버렸답니다.
그 후 저와 유진이는 친해졌습니다.
하지만 유진이는 여전히 장애인이나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민감하게 반응을 했습니다. 일기에는 동생이 싫고, 밉고, 가족이 싫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렇게 학예회 일정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희 반은 무엇을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제가 예체능 쪽에 재능이 없었거든요.
그때 생각해 낸 것이 수화 발표였습니다. 물론 저는 수화를 전혀 몰랐죠. 저는 유진이에게 “네가 정말 우리 반을 위해 그리고 선생님을 위해 중요한 역학을 해 줄 수 있어. 수화는 아름다운 언어잖아. 수화를 통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영어를 하는 것처럼 하나의 언어를 더 할 줄 아는 것이야. 그것도 그들에게는 삶이 되는 중요한 언어를
자랑스럽게 우리 반 아이들 가르쳐 주면 안 될까?”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유진이는 활짝 웃으면서 흔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그 후 유진이는 동생이 청각장애인인 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 반 수화 선생님이 되어 매주 1시간씩 학예회 발표를 할 수화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를 수화로 멋지게 학예회에서 발표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고요.
그렇게 저와 유진이의 그 해 유진이는 문제아도 블랙리스트도 아니었습니다. 저의 든든한 버팀목 이였죠. 아이들이 제가 하는 일에 반대를 하고 나서면 오히려 저를 두둔하고 아이들을 설득해 주는 든든한 저의 지지자였습니다.
그때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 삼아 유진이는 커서 동생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되고 싶다고 하며 지금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첫 담임을 했던 그 아이들이 벌써 고등학생이네요.
지금도 유진이의 경험은 여전히 제 교직생활의 버팀목이며 손언어인 수화를 만나게 해준 스승입니다. 물론 지금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가끔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 힘든 학교생활로 초심이 흔들릴때면 유진이에게 배운 사랑합니다를 손으로 반복해봅니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 아름다웠던 만남을 기억하며 지금 나의 아이들을 한껏 안아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