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나는 함안의 작은 시골학교에서 장유 대청초등학교라는 도시학교로 전근을 오게 되었고 1학년 3반 담임을 맡게 되었다. 내가 맡은 학급에는 정현(가명)이라는 청각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처음에 정현이가 우리 반인 것을 알고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나의 말을 전혀 들을 수 없고, 나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수화가 꼭 필요한 친구가 우리 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수화를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나에겐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조 선생님이 항상 정현과 함께 하셔서 보조 선생님이 나와 정현을 이어주고는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정현을 맡을 용기를 가진 것은 몇 년 전 통합학급 교사 연수를 받을 때 어느 선생님의 감동적인 사례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 나도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 사례는 한 팔이 없는 장애학생의 담임선생님이 그 학생이 자신의 장애를 이겨내고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작은 꿈들을 이루게 하여 장애인도
꿈을 가질 수 있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내 생애 최고의 감동 사례였다.
그때 강사 분은 실제 동영상과 함께 사례를 소개 해 주었는데, 그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 나도 언젠가 장애학생의 담임선생님을 하면, 그 학생이 장애를 이겨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고 그 당시 다짐했는데, 그 다짐을 지킬 기회가 어쩌면 나에게 온 것이라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모든 것이 기회이자 도전으로 다가왔다.
폴포츠의 렐슨도르마와 함께한 그때의 강연의 어쩌면 내 인생을 바꾸어 줄 정도로 감동적인 강연이었고, 그 강연이 나에게 동기 부여를 하여 나도 정현과의 1년을 통해 정현이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일반학급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맘에서 나와 정현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런 정현과 지내는 어느 날! 난 차를 타고 퇴근을 하다 정현과 그의 어머니가 길을 건너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난 반가운 마음에 차의 크락션을 울려 정현에게 표시를 했지만 정현이도, 어머니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미처 몰랐는데 정현의 어머님도 정현과 같은 청각 장애를 가지고 계셨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하는 나의 행동에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는 정현이의 가족, 그런 정현의 가족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정현과 정현의 가족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들까? 다른 사람의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그 어려움을 누가 알까?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아픔을 누가 알까? 여러 생각이 들면서 지금 정현이가 나의 학급에 있지만 나는 정현이가 세상과 소통하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니 미안한 맘이 들었고, 지금 내가 정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난 보조 선생님(수화선생님)의 통역을 통해 정현과 소통하는 것만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정현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정현이가 음의 전율을 몸으로 느끼도록 해 보자는 것이었다.
정현은 청각 장애가 있어 노래를 들을 수도 부를 수도 없다. 하지만 정현이가 음을 귀로 들을 수는 없어도, 가슴으로 느낄 수는 있다는 생각에 하루는 모든 친구들을 교실 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바닥에 큰 스피커를 되고, 크게 음악을 틀었다. 그 음악은 귀로도 들렸지만 바닥을 통해 학생들에게 울려 퍼졌다. 몇 몇 학생들은 너무 시끄럽고 울림이 너무 강해 가슴을 때고 일어서기도 했지만 정현은 엎드린 채로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음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의 첫 시도는 정현에게 정말 의미가 있었는데, 정현도 음을 느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 친구들이 정현을 대하는 태도는 정현이가 듣고, 말할 수 없어 답답한 존재로 여기고 조금씩 꺼려한다는 것이었다. 친구사이의 관계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화인데, 대화를 할 수 없으니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식물과 대화하기였다. 모든 학생들에게 화분 하나씩을 가져오도록하고 학급에서 식물을 관찰하면서 관찰일지를 적도록 하였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학생들에게 식물과 대화를 해보라고 했다.
어린 학생들이라 선생님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지만 나의 이 말은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여러 친구들이 ‘어떻게 식물과 대화를 해요’라고 말을 했다. 그런 친구들에게 난 여러분이 매일 식물을 관찰하고, 먼저 식물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면 식물과도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고 꼭 실천해 보라고 했다.
순수한 우리 반 학생들은 나의 말에 그날부터 교실에 있는 자신의 식물에 먼저 말을 걸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식물을 찾아 ‘ 오늘 날씨 좋구나!, ‘햇빛을 받고 싶구나?, ‘너는 꽃이 참 아름답구나! 등 일방적인 말하기부터 ‘오늘 친구 때문에 화가 났어’ 등의 투정어린 말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낸 후 나는 수업시간에 식물과 대화를 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학생들의 반응은 실로 놀라웠다. 자신의 식물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햇빛이 놓아주니 고마워하는 것 같아요’, ‘물을 주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등의 말을 했다.
학생들의 발표를 듣고 식물들의 반응을 꼼꼼하게 살펴 햇빛이 잘 드는 창가로 옮겨주고, 물을 주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영양제를 준 모든 것들이 식물과의 대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꼭 대화라는 것은 말을 통해서만 하는 것이 아님을 학생들에게 전달하였다. 식물에게 물을 주고 사랑을 주면 식물이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는 것도 일종의 대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현과 여러분도 말을 통해 대화할 수는 없지만, 식물과도 대화한 여러분들이니만큼 정현과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하고 정현을 멀리하지 말고 친구로 생각하고 먼저 다가가 대화하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반 학생들은 정현과 말이 아닌 방법으로 어떻게든 대화를 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난 학기 초 정현이가 있다는 것이 우리 반에 하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현과 지내면서 정현이가 우리 반인 것이 어쩌면 우리 학급 친구들에게는 너무나 큰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난 정현을 통해 나의 반 학생들에게 뭔가 교훈의 메시지를 주기로 결심했다.
우리 주변에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이 얼마나 불편한 삶을 살아가는지 우리 반 친구들이 정현을 통해 이해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에게 장애 이해 교육을 하기로 마음먹고 그 시작으로 우리 반 학생들에게 수화를 가르쳤다. 처음에 우리 반 학생들이 수화를 배울 땐 단지 재미차원에서 수화를 배웠다.
처음 접해 보는 언어이기에 신기해하기도 하고, 몸짓과 율동이 함께 하기에 재미있어 하면서 수화를 배웠다. 처음엔 정현이가 하는 수화를 알게 하지는 의미에서 학급 학생들에게 수화를 가르쳤는데, 수화를 배우면서 우리 반 친구들은 수화를 통해 대화해야 하는 청각 장애인은 불편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모두 수화를 배워 정현과 대화하면 정현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도 스스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금 열심히 수화를 배우고 있다. 특히 KT&G 복지재단의 수화사이트는 우리 학급 친구들에게 수화에 대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처음엔 정현을 이해하게 하고 정현과 소통하기 위해 수화를 가르쳤지만 지금 우리 반 학생들의 변화를 보면 수화를 가르친 것은 그 이상의 보람이 있다.
수화를 통해 처음엔 청각장애인, 좀 더 나아가 장애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 마음이 남을 이해하는 마음, 즉 옆에 있는 친구를 이해하는 마음으로까지 전이가 되었다. 즉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맘이 수화를 통해 싹트게 된 것이다.
“전화위복” 바로 우리 학급에 맞는 말이다. 처음에는 정현이가 있어 친구들이 우리 학급을 싫어하지는 않을까 학부모님들이 정현을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많은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학급에서 정현이의 존재는 내가 말로 가르칠 수 없는 큰 교훈을 친구들에게 주는 빛과 같은 존재이다. 정현이가 있기에 우리반 친구들은 장애인을 이해하는 마음,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맘을 선생님의 주입으로서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고 배우고 있는 것이다.
경남은 올해 교육 역점 과제가 책 읽는 학교, 노래하는 학교, 운동하는 학교이다. 이 역점 과제에 따라 전 학교에서 노래를 강조하는데, 우리 학교도 학급에서 노래를 가장 잘하는 학생을 뽑아 상을 주는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 맞춰 모든 학급 친구들이 열심히 노래 준비를 하였다. 말을 할 수 없는 정현에게 노래 부르기 대회는 어쩌면 나갈 수 없는 대회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현은 듣지는 못하는 노래의 음을 수화를 통해 표현해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화 선생님을 따라 율동을 따라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현이가 진지하게 연습하는 모습을 보자 정현이가 수화를 통해 노래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학급 친구들의 노래 발표에 정현이도 수화를 통해 노래를 하도록 했다. 사실 어린 학생들에게 큰 무엇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정현이가 자신의 노래 차례에서 수화를 한 것이 나 스스로에게는 최고의 감동이었지만 우리 학급 친구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몰랐다.
모든 친구들의 노래 발표가 끝나고, 마지막에 학생들의 투표를 통해 노래왕을 뽑았는데, 많은 학생들이 정현이의 노래에 손을 들어 정현이가 학급 노래왕이 되는 것을 보고 난 콧등이 짠해옴을 느꼈다. 나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학급 모든 친구들에게 정현이의 수화는 가슴으로 하는 노래로 들린 것이다. 학급 대표 노래왕이 되어 정현이의 수화는 방송을 타고 전 학교 친구들에게 전해졌고, 이제 우리학교
에서 정현은 학교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사실 이제 겨우 1학년인 정현이가 일반 학교에서 친구들과 생활하기에는 많은 어려움과 좌절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정현을 처음 접할 때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현이의 모습을 보면 정현이가 학교에서 생활하는 그 모습 하나 하나가 어쩌면 우리들에게 장애인을 편견의 시각으로 보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어 장애인과 일반인이 함께 하는데 너무나 큰 다리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정현이야 말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희망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난 2학기에 있을 학교 학예행사에서 정현을 위한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우리 반 학예 행사로 모든 친구들이 합창을 할 계획인데, 그 합창 지휘를 정현에게 맡길 예정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 방과 후 정현과 나는 합창 지휘를 연습하고 있는데, 정현은 듣지 못하지만 특별한 능력이 있다. 즉 사람의 표정을 잘 읽을 수가 있고, 또 친구들이 노래 부르는 입 모양을 보고 노래의 어느 부분을 하는지 아는 것이다.
내가 표정과 입모양을 달리하여 노래를 부르면 노래의 어느 부분인지를 알고 지휘를 하는 것이다. 음악의 신 베토벤이 청력을 조금씩 잃어가 듣지 못하면서도 여러 명곡을 만들어 낸 것처럼 난 정현도 듣지 못하지만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방과 후 충분히 정현과 연습하여 정현이가 우리 반 친구들의 표정과 입모양을 살펴 노래 지휘를 할 수 있을 때 합창 지휘를 정현에게 맡길 것인데, 아마 정현이가 멋지게 합창 지휘를 할 것이라 믿는다.
정현의 지휘에 맞춰 한 마음 한 뜻으로 우리 학급친구들이 노래 부를 그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처음에 정현을 보고 장애를 가져 불쌍하게만 여겼던 우리학급 친구들이 장애라는 것은 불편한 뿐이고, 누구나 장애를 가질 수 있고, 장애를 편견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 학급 친구들! 장애인을 무조건 동정하기보다 장애인의 불편한 점을 찾아 함께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하는 우리 학급 친구들!
정현과 우리 학급 친구들의 이야기는 장애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장애인과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내 인생 최고의 감동 휴먼스토리이다.